말씀을 품으신 마리아
[말씀]
■ 제1독서(이사 7,10-14)
기원전 8세기경 남 유다의 임금 아하즈는, 인접 소국들이 연합으로 가해온 위협을 모면하기 위해 강대국 아시리아 제국의 힘을 빌리고자 합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이와 같은 몰지각한 정책을 질타함과 아울러 역사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의지할 것을 촉구하나, 아하즈는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이사야는, 하느님은 당신의 구원계획을 조금도 늦추지 않으실 것임을 예고합니다. 다윗 왕조의 미래를 책임질 상속자가 태어날 것이며, 그는 ‘임마누엘’로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징표가 될 것입니다.
■ 제2독서(히브 10,4-10)
다른 모든 종교와 마찬가지로, 유다교의 신도들은 각종 종교의식에 힘입어 자신들을 좀먹는 악을 제거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으나, 이와 같은 종교의식들은 외적인 정화(淨化)만을 허용했을 뿐이며, 예언자들의 선포를 통하여 하느님으로부터 거부되기 일쑤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성부의 뜻에 응답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완전한 사랑으로 당신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신 분이며, 이로써 생명의 원천인 참 제사가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복음(루카 1,26-38)
하느님은 인간의 기대나 관점을 초월하여 신묘한 방법으로 당신을 인간에게 드러내시며 현존하십니다. 비천한 한 여인, 그러나 당신의 말씀에 온전히 열려 있던 신심 깊은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하느님은 몸소 당신의 ‘성전’을 마련하십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화해할 새 이스라엘의 백성의 참된 성전,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새김]
천주 성자께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십니다. 그러나 이는 모든 것이 사랑일 때, 사랑의 열매가 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은 삶 전체가 믿음이었던 한 여인 마리아를 통하여 사람의 모습을 취하십니다. 마리아 안에서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의 소명이 이제 완성의 길을 걷습니다. 마리아는 이스라엘이 순종해야 했던 하느님의 말씀에 온전히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마리아 안에서 싹틀 수 있게 되었으며, 세상의 구원자이신 예수님, 하느님께 참된 희생 제사를 올릴 수 있는 예수님 안에서 이 말씀은 효력을 드러낼 것입니다.
하느님은 마리아가 그러하기를 원하셨던 것처럼, 당신 거처로 바로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이 당신의 성전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김으로써 구세주의 거처가 되었듯이, 우리 역시 열린 마음, 자신을 온통 낮추는 마음으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거처가 되어드려야 합니다. 늘 말씀을 품고 가슴에 새기며, 그 말씀 안에 담긴 하느님의 구원 의지가 우리의 기도와 희생을 통하여 드러나고 실현에 옮겨질 수 있도록 마음을 모으고 힘을 내야 합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성모 마리아의 이 말씀 한마디로 구원의 새로운 역사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이 응답 속에는 그분이 감수해야 할 고통의 길들이 이미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기 예수님 출산의 시간부터 이집트 피난과 어린 시절, 온갖 반대를 무릅써야 했던 복음 전파 시기, 끝내 피땀을 흘려야 했던 수난과 처절한 십자가상 죽음의 시간에 이르기까지 성모님은 늘 아드님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를 우리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로 세워 주셨습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해서, 우리도 성모님처럼 말씀을 품고 살아가는 삶, 어떠한 고통에도 굴하지 않고 성모님의 도움으로 신앙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삶 다짐하며, 아울러 우리 주위를 살피는 가운데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다가가 영적으로는 물론 물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값진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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