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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24일 _ 김건태 루카 신부

작성자 : 김건태 작성일 : 2025-03-23 조회수 : 136

배척받는 예언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갈릴래아를 시작으로 복음 전파를 시작하시다가,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 고향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하는 반응이 뒤따르는 것을 보니, 그 말씀이 동네 사람들을 무척이나 불편하게 했던 모양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첫 말씀이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하는 말씀이었으니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 가톨릭교회가 경전으로 인정하는 구약성경46권이며, 그 가운데 예언서1/3을 차지하고 있으니, 분량은 물론 중요성에서도 뒤지지 않는 작품입니다.

성경의 예언자는 미래나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중심으로 하느님의 개입이 필요했던 때와 장소에 그분의 말씀을 전했던 사람입니다. 필요에 따라 과거를 돌이켜보고 미래를 내다보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적으로 현재를 위한 시도였습니다.

하느님의 개입이 필요했던 때와 장소 또는 대상은 언제나 하느님의 뜻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삶이 펼쳐졌던 때와 장소,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어, 기원전 8세기에 활동했던 예언자 아모스가 정의를 주제로 말씀을 전했던 것은 그 시대와 장소가 정의가 아니라 불의로 범벅이 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언자가 힘주어 전하는 말씀의 주제를 보면, 그 시대와 장소가 어떠한 문제를 안고 있었는지 쉽게 파악이 됩니다.

 

이처럼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장에서, 하느님을 대변하여 시대와 장소의 문제를 직시하고 소리를 높이니, 청중 대다수는 귀를 막고자 했고, 반대의 기세를 높이려 했습니다. 그러니 예언자는 늘 소외되고 반대의 표적이 되는 고독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오늘 예수님의 말씀대로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외적인 경우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구약시대의 대표적인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에, 그것도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방 지역에서 펼쳐진 일이었습니다. 엘리야와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와(1열왕 17) 엘리사와 시리아 군사령관 나아만에게 관한 이야기입니다(2열왕 5). 이 두 이방인은 예언자들을 통한 하느님의 말씀을 귀담아듣고 그대로 실천함으로써 구원에 이른 사람들입니다.

이와 같은 구체적인 역사적 예를 통해서 우리는, 결국 예언자들이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 곧 하느님 말씀의 내용 때문이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회개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올바른 길을 밟으라는 경계 또는 경고의 말씀을 마다하고, 그 잘못된 길을 고집하려는 의지가 예언자들을 밀어내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벼랑 끝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이라 하더라도, 세례성사를 통해 당신 자녀로 삼으신 가톨릭 신앙인이라 하더라도,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백성 됨 또는 자녀 됨이 특권이라면, 오히려 하느님 말씀 청취와 실천에 모범적으로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주님 말씀에 더욱 귀 기울이며 회개로 비뚤어진 신앙 자세를 바로잡는 가운데, 믿는 대로 행동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가꾸어나가는 귀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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