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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1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03-11 조회수 : 99

기도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이유 

 

 

어떤 분이 성당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는데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절실해요.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당신은 꼭 들어주시는 분이시잖아요.

저는 꼭 들어주신다는 것을 믿어요.

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면 당신은 하느님이 아니세요.

전 그런 하느님은 믿지 않을래요….” 

 

저는 청개구리 같은 성격이 있어서 누군가에게 무엇을 해 주려 하다가도 그 사람이 그것을 ‘당연히’ 해 주어야 하는 것처럼 말하거나 맡긴 것을 달라는 듯이 청하면, 왠지 기분이 상해서 해 주려던 것이 다시 주기 싫어질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마태 6,7-15)에서 예수님은 기도할 때 이교인들처럼 말을 많이 하거나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아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하느님도 당신의 자비가 크게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시지, 우리가 말을 많이 하거나 노력을 많이 해서 은총을 얻어냈다고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은총의 주도권자는 하느님이시지 우리가 이래저래 한다고 해서 그분의 결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특별히 주님의 기도를 알려주신 다음 ‘용서’에 대해 한 번 더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기도를 하고 나서 반드시 더 사랑이 증가하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닙니다.  

 

개연성이나 현실성은 개나 줘버린 영화 ‘7번 방의 선물’이 예전에 있었습니다.

지능이 유치원 수준인 용구라는 아버지가 예승이라는 예쁜 딸을 키우며 일어나는 일입니다.

용구는 큰 범죄의 누명을 쓰고 사형을 선고받아 교도소 7번 방에 갇히게 됩니다.

그곳에는 그 교도소의 짱으로 통하는 조폭 밀수범 오달수와 다른 흉악범들이 있었습니다.  

 

용구는 어린이 유괴, 강간, 살인이라는 죄목이 있었기 때문에 오달수에게 사람도 아니라며 심하게 구타당합니다.

그러나 본성이 착한 용구는 다른 조직이 오달수를 해하려 할 때 달려들어 용구를 구하고 자신이 대신 상해를 입게 됩니다.

이에 오달수는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보답하려고 하는데, 용구의 청은 딸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큰소리 뻥뻥 쳐 놓은 오달수는 어쩔 수 없이, 용구 딸 예승이를 빵 박스에 넣어서 7번 방으로

밀반입합니다.

만약 이것이 들통나면 7번 방에 있는 모두가 커다란 질책을 받을 것도 분명하고 광복절 특사와 같은 것도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방에 있던 한 명, 다혈질 모범수 신봉식이 간수가 지나갈 때 이 소리를 질러 간수를 부릅니다.

같은 방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설득하고, 말하면 죽는다고 아무리 으름장을 놓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봉식은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있고 그래서 특사로 나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간수가 문 앞에 서서 창살을 사이에 두고 둘은 마주섭니다.

그때 문 밑에는 예승이가 신봉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신봉식이 이 방에 아이가 있다고 말을 하려는 순간, 그 아이는 신봉식의 손을 잡으며 어른들은 가질 수 없는 맑고 애절한 눈빛으로 눈물을 흘리며 그를 바라봅니다.

이때 간수는 자기를 왜 불렀느냐고 신봉식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신봉식은 주저하다 결국 이렇게 말하고 맙니다. 

“저…. 저…. 빵 하나만 더 주세요…. 흑 흑” 

 

교도관은 “니가 장발장이냐?” 하며 자기 모자 속에 있던 빵을 구겨서 신봉식 입에 처넣습니다.

신봉식의 마음을 돌린 것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치에 맞는 합리적인 설득이 아니었습니다.

안 들어주면 안 믿겠다는 으름장도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지만 다만 ‘다 아시잖아요.

아빠가 절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 잠시만 아빠와 함께 있게 해 주세요.’라는 내용이 담긴

순결한 어린이의 눈망울이 모범수 신봉식의 마음을 순식간에 녹인 것입니다.  

 

기도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감정’입니다. 감정이 없는 바람은 진짜 바람처럼

흩어집니다.

고양이들이 무언가를 바라며 주인을 바라보는 눈빛을 상상해보십시오.

그 진정한 눈빛을 볼 때 주인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냥 지나가면서 야옹 한 번 하면 주인의 마음은 동요되지 않습니다.

매번 그렇게 한다면 주인은 자기를 무시하느냐며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로 사랑이 증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바라봐야 합니다.

성모송을 할 때는 성모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러면 나도 변화되고 그러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부모에게 10원 주며 감사하다고 하는 것보다는, 돈을 안 주더라도 손을 잡아주고 눈을 마주치며

길러줘서 감사하다는 말이 부모의 마음을 감동을 주는 데 더 좋습니다.  

 

예전에 ‘시크릿’이란 책이 유행하였습니다.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바라도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구체적으로 자신이 바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집을 갖고 싶다면 구체적으로 그 집을 상상하고 바라봅니다.

그러면 기쁨의 감정이 생깁니다.

이 감정이 결국 바라는 것을 이뤄준다는 내용입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어떤 약속을 주실 때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라”라고 시키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별을 바라보며 어떤 감정을 가졌을까요? 그 감정이 결국 이스라엘의 성조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기도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감정인데, 그 감정은 바라봄에서 옴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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