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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16일 _ 김건태 루카 신부

작성자 : 김건태 작성일 : 2025-02-15 조회수 : 140

평지 설교 : 참 행복의 길

 

[말씀]

1독서(예레 17,5-8)

이스라엘의 영적인 전승은 인간의 삶을 상호 대립하는 두 가지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살아가는 여정으로 이해하면서, 율법에 대한 순종은 생명으로, 율법에 대한 저항은 죽음으로 이끈다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전승을 수용하면서도, 한발 더 나아가 예레미야는 사라져 없어질 피조물에 마음을 둔다면 인간의 운명은 파멸을 피할 길이 없다고 역설합니다. 주님과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실천에 옮기는 삶이야말로 신앙인의 참된 삶입니다.

2독서(1코린 15,12.16-20)

영혼과 육신의 구별에 기초한 이원론을 바탕으로, 영혼만을 중시할 뿐 육신을 경시하던 그리스 사상에 젖어, 부활 신앙에 소극적이던 상당수의 코린토 교회 신자들을 거슬러,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은 근본적으로 영혼과 육신을 구별하지 않는 부활에 기초하고 있음을 상기시킴과 아울러, 이 신앙을 통해서만이 인간의 삶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부활 신앙 없이 우리의 신앙은 헛된 것이며 존재할 가치도 없을 것입니다.

복음(루카 6,17.20-26)

그리스도께서 참 행복에 대해 말씀하실 때, 그분 앞에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들, 세상의 힘 있는 자들에 의해 버림받는 사람들이 청중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미래의 행복이 아니라, 지금 그들이 누릴 수 있는 행복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겪고 있는 외적인 불행을 통하여 참된 삶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재력과 권력으로 인생을 평가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보다는, 마음의 참된 행복을 보장해주는 요소, 하느님께서 몸소 채워주시는 요소에 대한 희망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새김]

신구약 성경을 막론하고 성경의 하느님은 당신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이 언제 어디서나 참 행복, 참 생명을 누리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이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 인간은 창조주의 뜻이 담긴 말씀, 끝내 율법이라는 전문용어로 포장된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기본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비우려는 노력 없이 이 말씀을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가능하기나 한 일입니까? 더 채우려 하고 심지어 빼앗아 채우려는 모습으로는 행복이란 요원할 뿐입니다.

 

행복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용어 가운데 하나는 지금이라는 표현입니다.

결단을 내려 비워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며, 그에 대한 선물로서의 행복 역시 미래가 아니라 지금을 위한 행복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허락해주신 이승에서의 삶의 시간들, 이 시간들은 저승에서의 영원한 행복을 위해 그저 희생되어야 할 시간들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을 미리 맛보고 희망할 수 있는 시간들이어야 합니다.

지금 행복할 때, 우리는 저승에서도 행복할 것이며, 지금 부활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오늘의 예수님 말씀 안으로 좀 더 들어가 보면,

누가 불행한 사람이고 누가 행복한 사람인지를 구별하시기보다는, 모두가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줄곧 그런 사람으로 머물기를 바라시는 마음이 읽힙니다.

저주의 세계와 축복의 세계를 나눔에 목적을 두고 계신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이 세상에서 이미 축복받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그런 마음이 보입니다.

그러기에 가난과 굶주림과 슬픔과 미움 때문에 지금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읽거나 포기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살아가면 행복한 시간들을 맞이하게 되리라 약속하시는 듯합니다.

반대로 부유함과 배부름과 웃음과 명성으로 지금 행복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만하지 말고 언제든 상황은 바뀔 수 있음을 명심하며 깨어 준비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촉구하시는 듯합니다.

결국, 나누고 베푸는 삶으로 지금의 행복을 끝까지 누리라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이번 한 주간, 내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에 불안해하거나 자만자족을 일삼을 것이 아니라,

그것이 불행이든 행복이든 주님의 뜻 안에 있는 삶의 일부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가운데, 용기 내어 극복하고 슬기롭게 나누는 날들 되기를 기도합니다.

특히, 주위에 우리보다 훨씬 불행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한 기도와 관심이 더욱 깊고 넓어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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