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성당에는 어린이 미사에도 또 청소년 미사에도 많은 아이가 나옵니다. 교회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큰 희망이고 또 큰 기쁨이지만, 50대 중반을 넘어선 제가 아이들과 함께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세대 차이도 느끼고, 아이들과 함께 미사를 하고 나면 힘이 쫙 빠집니다. 함께하는 젊은 신부 한 명만 있어도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신부의 부족으로 인해 우리 본당에 보좌 신부가 올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친한 선배와 이야기할 일이 있었습니다. 가지고 있었던 고민, 즉 본당에 아이들이 많이 나오는데, 나 혼자 아이들을 담당하기에는 어렵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선배 신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야.”
우울한 마음으로 이야기했는데, 선배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힘내서 열심히 아이들에게 관심을 둘 수 있었습니다. 나니까 이렇게 할 수 있다고 하니까요.
힘이 되는 말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힘이 빠지는 말을 선택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았을까요? “너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데도, “너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는 거야.”라는 말을 해 버렸던 것이 아닐까요? 물론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로 더 안 되는 길로 나아갈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십니다. 군중은 주님께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물을 씻고 있던 어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보다 그물만 씻고 있을 뿐입니다. 그물을 씻고 있다는 것은 어부 일을 마쳤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단한 일과를 마쳤는데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말을 따르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을 그대로 따릅니다.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도록 어마어마하게 많은 고기를 잡게 됩니다. 베드로는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신적 권위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표현합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인데, 하느님의 말씀에도 그렇게 집중하지 못했는데, 예수님의 부르심에 커다란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힘이 되는 이 말씀에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희망의 말씀을 계속 전해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있었을까요? 세상의 일에만 집중하면서, 주님 곁을 떠나고만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나의 이웃에게는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요?
오늘의 명언: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청렴보다 더 신성한 것은 없다(랄프 왈드 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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