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천한 마음에 피는 하느님의 영광
[말씀]
■ 제1독서(말라 3,1-4)
기원전 5세기경에 활동한 말라키는, 바빌론 유배로부터 귀환한 유다 백성이 또다시 종교에 대한 무관심, 다시 말해서 ‘될 대로 돼라’ 식의 성향에 빠져들자 이를 강하게 질타하면서 동시에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하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독려해나간 예언자입니다. 그는 하느님을 앞서 길을 닦기 위해 파견될 사자(使者)를 예고합니다. 이 “계약의 사자”는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활동하며, 사람들이 주님께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할 것입니다. 새로운 엘리야가 예고됩니다.
■ 제2독서(히브 2,14-18)
유다인들의 일반적인 기대 속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는 대단한 인물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자인 메시아는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어린아이, 버려져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 초라한 인물을 통하여 주님은 구원을 이루어내실 것입니다. 사랑으로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쳐 자기의 형제들을 하느님과의 참된 사랑의 관계로 인도하며,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 구원의 길로 이끌어갈 것입니다.
■ 복음(루카 2,22-40)
오늘 복음에서 루카는 자기의 복음서 전체를 통하여 줄곧 확인하고 펼쳐나갈 내용을 강조합니다. 하느님은 사회적 강자들이 아니라 비천한 사람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시고, 이들의 믿음과 실천을 통하여 당신의 구원사업을 이루어나가실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시메온과 한나와 같은 비천한 마음의 소유자들은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가장 탁월한 가치인 사랑에 온통 열려 있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본보기입니다.
[새김]
이러저러한 스팩 쌓기나 직함 취득, 각종 수상 소식, 신문이나 방송, 매스컴 등장 등 세속적 화려함은 우리의 마음을 끌며, 이러한 화려함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지 못하더라도 그 대상 가까이 접근하여 대리 만족을 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이러한 의식이나 노력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를 일깨워줍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중심적 삶은 하느님 자녀로서의 삶과 거리가 있음을 깨닫게 해줍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삶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분께 온통 열려 있음입니다. 주님은 이와 같은 비천한 사람들의 마음에 당신의 빛을 비춰주시고,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빛의 축제, 초의 축제인 주님 봉헌은 이러한 가르침을 집약적으로 보여줍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드님을 낳으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유다교 법에 따라 정결 예식을 따르며,
나이 많은 시메온과 한나에게 영예스러운 직함이라고는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고 있는 이” 또는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비천한 아기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이방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영광을 내다봅니다.
마음이 비천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은총의 선물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마음이 비천한 이들을 통하여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주님은 비천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를 세례성사를 통해 당신 자녀로 삼으시고, 손에 촛불을 하나씩 쥐여 주셨습니다. 그 촛불을 들고 세상을 밝혀야 할 사명이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세상의 어둠이 아무리 깊고 넓다 하여도, 작지만 영롱한 우리의 촛불이 모여 세상을 가득 채운다면, 그 어둠은 금시 사라지고 세상은 온통 빛으로 환할 것입니다.
한편, 초가 제 몸을 온전히 태워 주위를 밝히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실천에 옮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 태우거나 억지로 태워, 그을음으로 주위를 불편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또한 주님께 축성을 받아 자신을 봉헌한 축성 생활자들, 곧 수도자들을 위한 날이기도 합니다.
사제 성소 이상으로 날로 격감하는 축성 생활 성소를 위하여 많은 기도 부탁드리며,
수사님들과 수녀님들 모두 축성 생활 안에서 행복하고 보람 있는 삶을 영위해 나가시도록 기도와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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