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기적
오늘 복음은, 문맥상, 열두 사도 선택을 소개하는 내일의 복음을 앞서는 말씀입니다. 복음 저자 마르코는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 주위로 수많은 사람이 몰려든다는 사실을 생동감 있게 서술합니다.
갈릴래아와 유다와 예루살렘만이 아니라, 이방인 지역에 속하는 (유다 남부에 자리한, 에돔족의 후손이 살고 있는)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지금의 레바논 지역에 속한) 티로와 시돈에서 큰 무리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몰려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군중들을 마주하시는 예수님의 반응은 우리를 다소 당황하게 만듭니다.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방법을 강구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 본문은 그분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이 이유가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일반적인 예수님의 모습은, 밀쳐 대는 일을 두려워하시거나 병자를 멀리하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망설임 없이 치유의 은사를 선사하시는 분으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분명 더 큰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많은 군중이, 이방인을 포함한 큰 무리가 예수님 주위로 모여든다는 사실로 복음 전파의 대상은 분명해졌고, 이 사실을 곧 사도로 불림을 받을 제자들도 목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기적이나 행적보다도 더 중요한 요소를 채워야 한다는 사실을 터득해야 합니다.
군중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곧 치유의 기적을 소문으로 듣고서 찾아옵니다. 그러나 육체적인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영적인 눈과 귀를 갖추어야 하고, 영적으로 보고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예수님은 기적이나 행적을 보이시기 전에, 먼저 말씀으로 가르치십니다. 가르치신 다음, 그 가르침의 내용 곧 믿음을 굳건하게 하시려고 기적을 포함한 행적을 보이십니다.
연중 주간에 접어들면서 우리가 이미 읽고 묵상한 복음 말씀들, 그 가운데 예수님의 행적을 살펴보면서, 이미 확인한 내용들입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 카파르나움의 수많은 병자, 나병 환자, 중풍 병자 치유 이야기, 그리고 (어제)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치유하시면서, 예수님은, 나아가 복음 저자들은, 치유 자체보다도 그 치유 사건이 담고 있는 메시지 전달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육체적인 병으로 마음까지 병들고 오그라든 사람들, 이들의 치유를 위해 늘 함께했던 선한 이웃들, 옛 전통에 얽매여 치유를 부정했던 완고한 마음의 소유자들, 이들 모두 우리 신앙인들의 긍정적이며 부정적인 본보기들입니다.
병자들을 치유하시면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과, 그러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것을 역설하십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나선 사도들, 사도들의 뒤를 잇는 우리 모두, 말씀과 행적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이웃들과 함께 그 나라에 들어설 수 있는 기쁨을 이미 현세에서 누릴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신학적으로 어려운 개념의 나라가 아닙니다.
내 마음에 하느님이 계시고,
주님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행복하다면,
우리는 이미 이 지상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맛보며 사는 것입니다.
더욱 진하게 맛보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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