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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22일 _ 김건태 루카 신부

작성자 : 김건태 작성일 : 2025-01-21 조회수 : 143

안식일은 생명의 날

 

 

어제에 이어 오늘도, 휴식의 날인 안식일에 예수님이 이루신 행적이 문제로 제기됩니다: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안식일법은 십계명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십계명은 5세기 교부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간결하게 정리해 놓으신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트나 동방교회의 십계명과 비교해보면, 계명이 열 가지라는 사실은 동일하나, 분류 자체에는 약간의 차이가 보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2계명을 프로테스탄트나 동방교회는 둘로(2-3계명) 나누어 놓았고, 9-10계명을 하나로(10계명) 묶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십계명 본문 자체가(탈출 20,2-17: 신명 5,6-21) 계명 앞에 첫째, 둘째, 셋째 등 서수를 붙이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그러함에도 이를 십계명으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기초로(탈출 34,28; 신명 4,13; 10,4), 1세기 유다교 학자 필론(Philon)과 5세기의 아우구스티노가, 본문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아우르면서도, 다소 다르게 분류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물론 필론이 속한 유다교도 이 십계명을 가장 중요한 법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유다교 제1계명이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라는 사실입니다(탈출 20,2: 신명 5,7). 십계명을 인간의 자유를 짓누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옛날 이집트에서처럼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서, 종살이라는 죽음에서 해방이라는 생명으로 이끌기 위해 주어진 법임을 강조하려는 차원으로 이해한다면, 필론의 분류법에 상당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 가운데 안식일법 제정 근거는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탈출 20,8-11; 신명 5,12-15).

하느님께서 엿새 동안 일하시고 이렛날에 쉬셨으니, 그분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도 마땅히 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물로 남종과 여종들, 이방인들, 하물며 집짐승까지도 쉬도록 명하고 있습니다. 엿새 동안 생업을 위해 고생했으니, 하루 휴식을 취하고, 다시 엿새 동안 생업에 종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휴식은 따라서 생명을 위한 것이며, 그러니 안식일은 생명의 날인 셈입니다. 신명기가 이집트에서의 종살이 생활을 상기시키는 다소 다른 근거를 제시하고 있으나, 생명 수호라는 주제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오늘 주님은 치유 사건을 통하여 안식일 본래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하십니다.

생명의 하느님께 바쳐야 할 날, 하느님께서 사랑을 나누시고자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신 사람을 위한 날, 그 사람이 죽음의 상태에 있다면 당연히 (치유로) 생명을 되돌려주어야 할 날임을 강조하십니다.

문제는 마음이 완고해 생명이 아니라 죽음의 세계를 즐기는 자들, 곧 바리사이들의 의식입니다. 노기를 띠실 수밖에 없고, 슬픈 감정을 숨길 수 없으셨던 대상들, 진정 오그라든 손이 아니라 마음을 뻗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뻗어라.

 

오늘 주님은, 바리사이들을 향해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이웃의 생명과 행복에 대한 우리의 닫힌 마음을 꾸짖으시는 것 같습니다.

해결 방법은 오그라들고 닫힌 우리의 마음을 펴면 됩니다, 뻗으면 됩니다!

펴고 뻗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웃을 더불어 살아야 할 존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고마운 분들이라는 마음으로,

그분들과 더불어 생명의 하느님을 찬미하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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