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가죽 부대
경직된 옛 율법과 전통을 담고 있는 헌 가죽 부대를 대표하는 사람들과,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을 담을 새 가죽 부대로 상징되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은 예나 지금이나 그칠 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철저한 율법주의에 얽매여 있던 바리사이들에게, 이제 막 태어난 그리스도교는 전통과 율법을 무시하거나 파괴하는 사람들의 모임 정도로 비쳤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논쟁 주제인 단식은 사실 모든 종교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종교의식 또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식을 하느님 앞에서 인간의 비천함과 희망과 사랑을 드러내는 하나의 신앙 행위로 가르칩니다.
단식의 기회와 동기는 실로 다양할 수 있으나, 하느님의 업적을 받아들이고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려는 겸손한 마음으로 신앙인의 자세를 확립하려는 마음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느님께 기쁨이 되는 참된 단식은 따라서 이웃 사랑과 연결되어야 하며, 기도와 자선에서 분리될 수 없습니다. 기도와 자선처럼 단식도 남에게 드러내 보여서는 안 됩니다(마태 6,5-18). 단식은 하나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던지는 어찌하여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는 질문에서,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버린 단식, 보여 주기 위한 단식이 엿보입니다.
이러한 질문 앞에서, 예수님은 신랑이 함께 있는 지금은 단식이 아니라 축제의 시기임을 분명히 밝히시지만, 아울러 형식적이며 위선적인 단식 행위를 단죄하고 계십니다.
하나의 전통 내지 규정으로서가 아니라, 또는 남들이 하니까 그냥 따라 하는 단식이 아니라,
신랑을 빼앗길 날과 같은 때,
곧 내 마음이 헛된 것으로 가득 차 주님을 모실 공간이 사라져버린 결정적인 때,
몸과 마음을 바꾸는 회개의 몸짓, 오로지 하느님과 이웃을 향하는 사랑의 몸짓으로 단식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주님이 들려주시는 가르침과 보여주시는 행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 모든 가르침과 행적이 사랑이라는 두 글자 안에 집약된다는 자발적인 결론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새 포도주를 마음에 담고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새 가죽 부대가 꼭 필요합니다.
옛것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다짐과 용기를 앞세워, 가족이나 이웃과의 관계 형성이 오로지 사랑을 중심으로 펼쳐질 수 있도록 힘쓰는 가운데, 기분 좋은 하루, 그리고 한 주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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