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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7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01-17 조회수 : 145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복음: 마르 2,1-12 
 
오늘 우리에게는 아픈 동료를 향한 측은지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지?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이 간단한 표현 안에 한 가련한 인생의 길고 고통스럽고 슬픈 스토리가 담겨 있습니다. 
 
환자의 상태는 깊어질 대로 깊어졌습니다.
오랜 병고의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힘으로 걷기는커녕 몸도 일으키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다 보니 매사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저도 몇 년 전 심각한 목 디스크, 허리 디스크 증세가 겹쳐 죽을 고생을 한적이 있습니다.
삶의 질이 그야말로 심각히 떨어지더군요.
평소 식은 죽 먹기던 샤워하는 일, 옷 입는 일, 걸어다니는 일이 언제나 큰 숙제가 되었습니다. 
 
미사를 봉헌할 때, 양손을 들어 올리는 일조차 버거워서 정말이지 우울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에서부터 화장실까지 불과 100미터도 안되는 거리를 다녀오는데 10분이 더 걸렸습니다.
그때 저는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이웃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고통이 얼마나 심각하고 다양한 것인지를 온몸으로 실감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환자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병세가 심각해지다보니 돌아눕는 것조차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식사하는 일, 용변보는 일까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니, 얼마나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했을까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버겁고 참담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암담한 상태에서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걸어가던 그에게 하루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치유자 예수님에 대한 소식입니다.
그분 옷자락에 손을 대기만 하면, 그분 옆에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그 어떤 불치병 환자이든 상관없이 그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난다는 데... 
 
그러나 그는 사지가 마비되어 예수님 계신 곳을 찾아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때 기적같은 일이 그에게 벌어집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평소 그를 가엾이 여긴 네 사람이 그를 찾아옵니다. 
 
네 사람은 즉석에서 그를 위한 간이침대를 만들었습니다.
긴 막대기 두 개 사이에 천을 대고 묶었습니다. 들것 위에 환자를 눕힌 네 사람은 보조를 맞추어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을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환자와 함께 먼길을 걸어온 네 사람이 현장에 도착해보니, 산 너머 산이라고 난감한 일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집 안팎은 그분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완장을 어깨에 차고 질서 유지를 하고 있던 사도들이 번호표를 나눠주었는데, 순번에 따르면 이박삼일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고민을 거듭하던 네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하나 제안했습니다.
정문, 후문이 모두 봉쇄되었으니, 지붕 쪽을 공략하기로. 네 사람은 환자와 함께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다행히 유다인들 가옥의 지붕은 개폐식이었습니다. 
 
어렵사리 예수님께서 앉아계시는 공간의 지붕을 연 네 사람은 환자의 들것 네 귀퉁이에 긴 끈을 매달아 조심스럽게 환자를 예수님 앞으로 내려보냈습니다.
해도해도 너무한 그들의 기상천외한 방법에 화가 날 법도 한데, 예수님께서는 환자를 향한 그들의 적극성과 예수님을 향한 강한 믿음을 높이 평가하시고 치유의 은총을 선물로 주십니다. 
 
오늘 복음은 인간의 비참함과 인간의 위대함을 동시에 묵상하도록 초대합니다.
네 사람은 구원자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환자를 향한 따뜻한 마음, 강한 연민의 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공동체를 바라봅니다.
오늘 우리에게 네 의인이 지니고 있었던 아픈 동료 인간 존재를 향한 측은지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저런 병고에 시달리는 이웃을 어떻게 하면 치유시키고 구원으로 인도하고픈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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