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나병환자 치유 이야기를 듣습니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듯이, 한센병으로 불리기 전까지 나병은 불치의 병, 저주의 병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더욱이 전염되는 병으로 취급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접촉은 엄금되었으며, 나병환자로 판명되는 순간부터 공동체에서 추방되어 격리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레위 13,45-46 참조). 그러니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 무너지게 하는 무서운 병, 살아 있어도 죽은 목숨과 같은 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병환자가 치유를 간청하기 위해, 율법을 어기고, 예수님께 다가옵니다.
그 장면이 기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제자들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모두 그 자리를 떴을 것입니다. 그는 엎드려 청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예수님도 율법을 초월하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청원자의 애타는 마음을 감안하여 그의 글귀를 그대로 반복하시며 치유의 은혜를 내리십니다.
나병환자에게 몸이 깨끗하게 되는 육체적 치유 문제는 이제 별 의미가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가족을 포함한 모든 이가 자신을 멀리하는 데도, 이분은 나를 만나 주시고 내 몸에다 손까지 대시니, 이토록 함께하시며 내 마음의 깊은 병을 치유해 주시니,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지금은 이러한 표현 사용하지 않지만 – 절대 사용해서도 안 됐었지만 -, 혹시 미감아(未感兒)라는 표현을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자 그대로 ‘아직 감염되지 않은 아이’라는 뜻입니다.
부모로부터 병이 옮겨지지 않았다는 말이고, 이때의 병은 항상 한센병, 곧 예전의 나병에 국한되어 있었던 터라, 그 의미는 특히 부모에게 비참의 극치를 맛보게 하는 표현이었습니다.
노르웨이의 한센 박사가 나균을 발견하여 그 치료 방법을 찾아내기까지, 나병은 전염병으로 인식되어 왔으니 오죽했겠습니까!
거의 50년이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제 기억에 생생한 체험이 하나 있습니다.
대신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 군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제대했을 때, 복학까지는 4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습니다. 당시 본당 신부님이 [수원교구 중고등학교 연합회] 지도를 맡고 계셨는데, 겨울 방학을 이용하여 행사를 하나 계획하고 있으니, 대신 맡아 지도하고 준비하라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행사 수익금 전액은, 방금 말씀드린, 미감아를 위해 사용될 것이라는 말씀도 함께 주셨습니다. 하여 각 본당 학생회를 방문하며 준비에 들어갔고, 수원 시민회관에서 성황리에 행사를 마쳤고, 입장료와 찬조금 등으로 어느 정도의 수익금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본당 신부님은 내친김에 용문 본당 관할 음성나환자 정착촌(상록촌)을 방문하여 수익금 전액을 직접 전달하라 하셔서, 학생회 간부들과 그 마을을 방문했고, 전달식을 마치고 곧 돌아올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을 구성원들이 바라는 것은 이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하고서, 학생회 간부들을 먼저 보내고, 저는 하룻밤을 지내며 교리교육과 친교의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학생들도 각자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서 허락을 받고, 바로 그 ‘미감아들’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고맙고 기특한 일이었습니다.
조금 늦은 시간에 마련된 친교의 시간, 음주와 함께 노래자랑 시간이 돌아왔을 때, 제 또래의 젊은이가 다가와서 제게 소름 끼치는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내게는 당신이 구세주요!” 함께하려는 마음을 조금 표현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육체적인 병도 병이지만 이분들이 정말 고통스러워하는 부분은 소외이며, 이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늘 예수님께서 나병환자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함께함입니다.
육체적이며 정신적인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웃들에게 다가가 함께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제자들임을 드러내고, 그들 또한 힘을 내서 함께 제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성원하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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