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운 해
루카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의 선교 사명은 당신의 고향 나자렛의 유다교 회당에서, 안식일 전례 중에 선포되고 개시됩니다.
유다교 전례에서 안식일에는 보통 두 개의 성경 본문이 봉독되었습니다. 하나는 토라 곧 오경에서 택한 본문으로서 율법학자가 읽고서 해설했으며, 다른 하나는 느비임 곧 예언서에서 취한 본문으로서 30세가 된 성인이면 ‘누구든지’ 읽고 해설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의 ‘누구든지’는 회당장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지명 또는 부탁을 했습니다.
오늘은 막 30세에 이르신, 유다교 전통에 따라 공적인 자리에 서서 말할 자격이 부여되던 나이에 이르신 예수님이 지명을 받으셨고, 그래서 예수님은 예언서 가운데 당신의 직무를 예고하고 있는 부분을 펼쳐 드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봉독하신 독서는 이사야서 61장 1-2절의 말씀입니다. 기원전 8세기에 활동했던 역사적 인물 이사야의(1-39장) 정신을 이어받아, 바빌론 유대시대에 흔히 2이사야라 불리는 예언자가 40-55장을, 유배시대 이후 제3이사야가 56-66장을 남겼습니다.
유배시대 이후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재정착에서 비롯된 각종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던 시대, 따라서 조언과 위로와 희망의 말씀이 절실했던 시대였습니다.
이사야서를 통해서 예수님은 당신을 주님께서 기름을 부어 주신 분으로 소개하십니다. 그러니까 주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그리스어로는 그리스도, 아람어로는 메시아)이심을 밝히십니다.
세상을 위한 구원사업은 바로 하느님의 뜻이며, 이 뜻을 완수하기 위해 그분으로부터 기름으로 축성되고 파견된 존재임을 선언하고 계신 겁니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기쁜 소식, 잡혀간 이들과 억압받는 이들에게는 해방, 눈먼 이들은 다시 보게 하기, 한 마디로 은혜로운 해 선포에 당신의 사명이 있음을 천명하십니다. 물론 말씀으로만 이루어지는 선포가 아니라, 온몸을 투신하여 이루어내실 선포를 말합니다. 당신의 구원 사업 일체,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한 완성까지 담고 있는 선포입니다.
루카 복음저자는 유다교에서 은혜로운 해, 곧 희년(禧年)이라는 표현을 빌려오면서도, 이 세상에 예수님 오심을 비롯하여,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포함한 지상에서의 구원사업 전체를, 끝으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시리라는 약속 일체를 은혜로운 해의 핵심 내용으로 받아들이고 전하고자 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가슴에 더욱 깊이 새겨집니다.
교황님께서 희년으로 선포하신 이 한 해, 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따돌림 받고 있는 사람들, 억울하게 묶여 있거나 숨쉬기조차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처럼 다가가 도움의 손길을 펼치며 그들과 함께하는 가운데,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하신 주님의 말씀을 우리도 힘차게 외치면서, 너와 나, 우리 모두에게 은혜로운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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