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은 많은 군중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시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훨씬 넘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은 그러나, 군중과 작별하신 다음 산으로 향하십니다. 기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에게도 기도가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떠오를 수 있으나, 기도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뜻을 살피는 일이라면, 하느님의 뜻인 인류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 기도는 늘 필요하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아마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 곧 주님의 기도를 통해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셨을 것입니다.
이어서 물 위를 걸어가시는 주님이 소개됩니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면서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불은 흔적이라도 남기지만, 물은 흔적조차 말끔히 지워버린다는 사실에서도 두려움의 정도는 한층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천지창조 이야기에서의 물, 노아의 홍수에서의 물, 홍해 바다의 물 등, 그러나 성경의 하느님은 이 두려움의 요소들을 제압하시고, 인간에게 새로운 세상과 약속의 땅을 향한 여정에 희망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그것이 생명의 원천이든 극도의 두려움의 요소이든, 물을 지배하시는 주님을, 주님의 능력을 확인합니다.
물 위를 걸으시는 주님을 뵈면서 제자들은 또 한 번 두려움에 싸입니다. 아직 마음이 굳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군중에게 많은 가르침과 빵의 기적으로 당신이 참 목자이심을 분명히 드러내 보여주셨는데도 말입니다. 양들이 어떤 상황에 놓이든 목자로서 늘 함께하시는 분임을 밝혀주셨는데도 말입니다.
제자들에게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다시 한번 함께하고 계심을 확인시키는 일입니다. 나(는 있)다, 두려워하지 마라.
1인칭으로 나(는 있)다는 본디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 표현으로서,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실 때 처음 발견됩니다(탈출 3,14: 3인칭으로는 그[는 있]다이며, 히브리어로 야훼가 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나(는 있)다라는 말씀 속에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더 나아가 하느님이심을 밝히시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이 표현이 나 여기 있음을, 나 너희와 함께 있음을,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앞으로 어떠한 일에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격려와 위로의 말씀임이 틀림없다는 사실로 충분합니다.
어렸을 적 아무리 무섭고 두려운 일이 있어도, 부모님만 옆에 계시면, 부모님의 나 여기 있어 하는 말씀 한마디면, 그 모든 두려움이 싹 가셨던 것처럼, 주님이 함께하심을 믿기만 하면 두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는 신앙인으로서의 성숙을 다져나가는 가운데, 희년(禧年)의 진정한 의미를 새기는 한 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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