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움을 밝히는 빛
[말씀]
■ 제1독서(이사 60,1-6)
유배시대 직후 아직 성전은 재건되지 않았으나, 익명의 제3이사야 예언자에게 예루살렘은 페르시아 제국에 병합된 자그마한 나라의 수도를 뛰어넘어, 이 세상 신앙의 중심지로 이해됩니다. 예루살렘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곳, 이 영광의 빛에 인도되어 오늘 복음 속의 동방박사들을 포함한 뭇 민족이 주님을 높이 찬양하러 모여들 곳, 새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지가 될 성도(聖都)이기 때문입니다.
■ 제2독서(에페, 3,2.3ㄴ.5-6)
수인(囚人)의 몸이 된 바오로는 감옥에서 하느님께서 자신을 통해 이루신 작품의 의미에 대하여 묵상합니다. 하느님의 ‘신비’를 이해하고 수용하기 위해서 모든 인간에게는 인내와 끈기, 부단한 신앙적 성숙이 요구됩니다. 이 신비는 유다인과 이방인 사이의 종교적이며 민족적인 갈등 극복으로 상징되는 인간상호간의 진정한 화해를 전제로 수용 가능한 하느님의 심오한 계획을 말합니다. 성령의 인도와 빛이 절실합니다.
■ 복음(마태 2,1-12)
이스라엘의 오랜 기다림에 예수께서 진정 어떻게 응답하고 계신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복음저자 마태오는 동방박사의 방문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부와 지혜를 겸비했던 동방박사들, 예전에는 이스라엘을 짓누르는 데 자신들의 부와 지혜를 활용했던 이들이, 예언자들의 말씀에 귀 기울임으로써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동족에 의해 핍박을 받으실 아기 예수님을 찾아뵙고 경배합니다. 이와 같은 역설적인 방법으로 예언자 이사야의 말씀이 성취됩니다. 신앙의 공동체인 새 이스라엘이 옛 이스라엘을 대체하여 세상의 빛으로 떠오릅니다.
[새김]
새해 첫 주일인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강보에 싸여 있던 아기 예수님이 당신의 모습을 공적으로 드러내신 사건을 기념합니다. 특이한 것은 그 대상이 유다 지도자들이 아니라 동방박사들, 곧 이방인 지도자들이라는 점입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기이한 일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그토록 고대했던 그분을,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가난하고 순수한 목자들을 제외하고는 알아보지 못한 그분을, 이방인 지도자들이 그 멀고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예물을 올리며 경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이스라엘의 탄생을 예고하는 사건입니다. 유다인들의 배타적이며 폐쇄적인 구원관을 벗어나, 이방인들도 구원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공표하는 역사적인 구원사건입니다. 오늘 축일의 가장 큰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편, 동방박사들의 모습, 그들의 여정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큰 가르침으로 다가옵니다.
▪ 첫 체험은 단순했을 것입니다. 동방에서 특이한 별 하나를 발견하고서는 지나치지 않고, 늘 그래 왔듯이, 탐구적 자세로 임함으로써 그 별이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징표임을 식별해냅니다.
▪ 다음으로 이러한 지적인 식별에 만족하지 않고서, 이들은 구도적 자세로 찾아 나서기로, 따라나서기로 다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동방박사들이 이미 예루살렘에 당도한 것으로 이야기되나, (박사에 해당하는 그리스말이 본디 메소포타미 지방에서 중시되던 점성술이나 해몽에 능통한 현인이나 사제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최소한 두 달 이상 걸리는 거리, 특히) 밤길을 걸으며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고, 내적 갈등도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제대로 본 것인가, 올바른 결정이었나, 이 길을 계속해야 하나 등등의 회의감이 온몸을 휘감았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상호간 이견도 있었을 것이고, 때로는 마찰도 감수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서 서로를 위로하고 힘과 용기를 주며 별을 따르는 길을 이어갑니다.
▪ 그런데 지금까지 잘 이끌어 주던 그 별이 사라집니다. 최대의 위기가 도래한 것입니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른 것 같은데 하는 기대만큼이나 실망감도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그 빛이, 그 별이 다시 길을 밝혀 주리라는 희망과 불굴의 자세로 방법을 찾습니다. 그분이 어디 계십니까? 하는 질문으로 도움을 청합니다.
▪ 동방박사들은 결국 그 별을 다시 만나며, 별의 인도로 구세주 예수님을 만나 경배하는 영광을 누립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예고하는 상징적 예물인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올려드리면서 말입니다.
아기 예수님은 당신의 존재를, 우선 당신을 품으신 마리아와 요셉, 착하고 순진한 목동들, 이어서 동방박사들처럼 전생을 내거는 거룩한 모험에 몸을 던지는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린 사람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늘 깨어 기도하며 포기하지 않는 신앙들에게 주님은 오늘도 당신을 보여주십니다.
이러한 변함없는 신앙, 포기하지 않는 의지로 주님을 뵙는 은총을 받았다면, 이제 우리가 신앙의 위기 속에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에게 빛이 되어주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찾아서 알려주어야 하는 새 가족들(미신자들), 찾아서 다시 주님께 인도해야 하는 우리 가족들(쉬는 신자들)이, 이끌어 주고 도와주었으면 하는 빛이 바로 우리이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다시 한번, 아직 주님을 모르는 이들과, 알고는 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피하거나 쉬고 있는 신자들에게, 바로 우리가 별이 되어 힘껏 전하고 정성껏 알리는 은혜로운 한 해 되기를 바라며 두 손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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