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을 바라보는 눈
성탄 대축일을 기뻐하고 경축하는 성탄시기에, 오늘 우리는 아기 예수님에 대한 예언자들의 시선을 마주합니다.
어제(12월 29일) 복음에 등장하는 시메온,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하고 외친 시메온에 이어, 오늘은 나이가 많은 과부 예언자 한나를 만납니다.
구약성경이 문을 닫기에 앞서 신약성경의 갓난아기를 주시하는 것 같습니다.
한나는 여전히 거룩한 과부들의 본보기로 소개됩니다. 오랜 기간의 과부 생활 동안,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겨온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고아와 이방인과 함께 사회의 대표적 약자로 취급되어 온 과부, 어찌 보면 희망의 빛이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절망의 여인이었으나, 성전을 떠나는 일이 없이, 곧 공동체와 함께하며 기도와 단식으로 하느님께 온전히 모든 것을 내맡기고 살아온 인물입니다.
시메온처럼 이 여인도 성령의 인도로, 마리아와 요셉이 주님께 봉헌하기 위해 데려온, 이 아기가 이스라엘이 기다려온 구세주임을 선포합니다.
한나와 관련된 세 개의 고유명사가 가리키는 바가 이 아기가 구세주임을 밝혀줍니다. 한나라는 이름이 총애를, 아버지 프누엘이 하느님의 빛을, 그녀가 속한 지파 아세르가 기쁨 또는 행복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기가 하느님의 총애를 받는 아기, 그분의 빛이며 기쁨인 구세주이심을 암묵적으로 가리킵니다.
강생, 곧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심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이유는 단지 믿음이 부족해서만이 아니라, 강생 사건이 아무도 모르게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르게 이루어진 사건! 단순한 믿음만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성탄 사건! 이 사건을 제대로 알아보고 믿음으로 고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영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한나처럼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김으로써 선사 받은 그 시선이 필요합니다.
성탄의 참 의미를 파악하고 그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가난하고 순수한 마음, 하느님의 뜻에 귀 기울이는 신앙인의 자세가 앞서야 합니다.
마리아와 요셉, 착한 목동들, 시메온과 한나, 동방박사들이 보여준 마음과 자세를 본받아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형제들, 특히 지금도 차갑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마구간에서 힘들어하는 이웃들 안에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뵙고 경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과 내일, 남은 시간 동안 우리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이웃 형제자매들에게 다가가, 아기 예수님을 뵙고 사랑과 빛과 기쁨을 나누는 시간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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