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은총
오늘 복음은,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사랑, 그분의 구원 의지에 관한 예고 말씀을 접했던 또 다른 증인, 즈카르야를 소개합니다. 이 사람은 불신으로 말미암아 말을 못하게 되었으나, 이제는 말씀에 따라 사는 사람으로 새롭게 탄생합니다.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지어주는 문제에서, 비록 세속의 전통에 어긋난다 하더라도, 즈카르야는 이번에는 천사를 통한 하느님의 지시를 그대로 따릅니다: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루카 1,13).
즈카르야는 이제 하느님의 뜻을 알아보았고, 요한이라는 이름의 의미대로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 자식 없는 서러움에서 자식을 품게 된 은총, 불신에 대한 응벌로 말을 못하게 된 상태에서 소리 높여 하느님을 찬송하게 된 은총을 받은 사람이 됩니다.
결국 이 일로 주변 사람들조차, 두려움에 떨면서도, 요한의 미래를 내다보는 은총, 주님의 손길이 요한을 보살필 것이라 확신하는 은총 속에 머물게 됩니다.
우리 역시, 왜 그러한 일이 내게 닥치는지 이유도 모르면서, 신앙인으로 하느님의 뜻 앞에 서고, 그 뜻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거나, 내 능력을 훨씬 벗어나는 일임에도 피하지 못하고 결국 받아들여야 하는 사명 앞에 서게 되는 경우 등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경우가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보고, 그분의 은총을 체험하는 결정적인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상상도 하지 못했던 힘과 용기가 나고, 잘 다스려 나갔던 시간들,
그토록 무겁게 다가왔던 짐이 그렇게 가볍게 지나갔던 시간들,
하느님의 은총 덕분이었을 고백하고 찬미의 소리를 높였던 시간들 말입니다.
내적인 평화가 나를 휩싸고, 주님과 깊고 넓은 친교를 나누었던 시간들 말입니다.
성탄대축일이 곧 다가옵니다.
아직도 우리 마음속에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일말의 의구심이라도 담겨 있다면, 즈카르야를 다시 한번 보고 배우도록 합시다.
의심했지만, 그래서 말을 못하는 응벌의 시간을 살아야 했지만, 이 시간을 새로 태어남의 시간으로 극복하여, 끝내 하느님의 은총 속에 머물게 된 즈카르야는 우리의 새로남, 우리를 성탄의 길로 인도하는 탁월한 증인이요 안내자로 서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당신 은총의 수혜자가 될 사람들을 찾아 나서시는 주님께 주님, 여기 있습니다 하고 응답하며, 적극 나서는 은총의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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