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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일 _ 김건태 루카 신부

작성자 : 김건태 작성일 : 2024-12-01 조회수 : 88

대림 제1주일

 

 우리는 세월의 흐름을 몸소 체감하면서 각자 하나 이상의 감정을 소유하고 있다. 흔히들, 세월의 흐름 하면, 무상, 덧없음이라는 감정을 먼저 내세우지만, 신앙의 눈으로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렇게 고마울 데가 없는 섭리가 아닌가 깨닫기도 한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살아도 부족한 것이 시간이고 보면, 그 부족한 시간을 뒤로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큰 은총의 선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부족한 어제, 한 주, 한 달, 한 해를 뒤로 할 수 있으니, 아니 뒤로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받아주시고 용서해주시니, 내일을, 새로운 한 주간/한 달을, 새로운 한 해를 살아보겠다는 힘과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한 해를 뒤로 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용서와 함께 또 한 번 기회를 주시는 주님께 감사의 마음을 더 할 뿐이다.

오늘, 올해는 그 오늘이 121, 세속의 달력으로는 한 해 마지막 시기이기도 한 오늘부터 신앙의 새로운 한 해가 열린다. 교회는 이 신앙의 한 해, 첫 시간들을 대림시기로 설정해 놓고서, 모든 신앙인들이 주님 오심을 기억하고 기다리고 준비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우선 우리는 역사적 사건을 기억한다. 2000년전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사건을 먼저 떠올린다. 시나이산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이 백성이 당신 백성답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율법으로, 예언자들의 말씀으로, 현인들의 가르침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하셨지만, 선민사상, 거기서 비롯된 배타주의, 오만과 독선에 빠져 있던 이 백성을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당신 아드님을 우리와 똑같은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처절한 땅바닥 밑으로 내려보내신 사건, 한 마디로 구원의 사건, 사랑의 대사건, 사랑의 신비를 기억하고 새긴다.

아울러 대림시기는 미래에 실현될 주님 재림을 기다리는 시기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러 의로운 심판관으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면 준비하는 시기이다. 우선은, 거창한 최후의 심판을 말하기에 앞서서, 우리 각자가 주님 앞에 서서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 지상에서의 삶을 정리해야 할 시간 속의 주님을 기다리며 준비한다.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한다.” 거기에는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넘어가는 관문이라는 우리 신앙인들의 고백과 믿음이 깔려 있다. 늘 의로우신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그분이 당신 아드님을 통하여, 아드님의 수난과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준비해 두신 하늘 나라에 들어설 수 있도록, 진리를 찾고 의로움을 추구하고 평화를 이룩하는 삶은 그러기에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든, 미래에 다가올 사건이든,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이다. 과거의 사랑의 대사건을 기억하는 시기도 지금이며, 미래의 주님 맞이를 위해 연습하고 훈련해야 할 시기도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주님의 성탄하심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시기 이상으로, 우리의 성탄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되야한다는 당위성 앞에 선다. 우리 각자의 성탄 없는 주님 성탄은, 매년 되풀이되는 의미 없는 통과 의례, 나아가 주님을 슬프게 하거나 고통스럽게 해드리는 구경거리 정도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탄할 수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주님이 취하신 모습 가운데 하나를 그대로 본받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엇보다고 하느님이 하느님이심(神性)을 포기하고 사람이 되어, 곧 인성(人性)을 취해 내려오셨음을 마음에 새기며 살면 되지 않을까 한다. 당신 자신을 포기하시고 그 높은 곳에서 이 비천한 땅바닥으로 내려오셨음을 말이다. 성탄하기 위해서는 내려가는 삶이 우선적이고 기본적인 삶이 되어야 한다는 위대한 가르침이다. 하느님처럼 본성까지 포기하고, 곧 인성까지 포기하고 내려갈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를테면 개나 소가 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조금만이라도 내려가는 삶을 다짐해 보도록 하다. 내가 만나거나 함께하기를 꺼려했던 사람에게 내려갈 때, 늘 귀찮게 생각했던 일이나 심지어 손사래까지 쳤던 일로 내려갈 때, 거기에서 우리는 비로소 베틀레헴을 확인할 수 있고, 거기에서 우리는 내 안에 성탄하실 예수님을 만나 뵈올 수 있을 것이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대림시기, 사람이 되어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으로 내려오시는 주님처럼, 내려가는 삶으로 주님의 성탄, 곧 우리의 성탄을 준비하며, 준비하는 이 시간들, 다짐들, 노력들을 성탄 예물로 올릴 수 있는 기쁨의 성탄대축일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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