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언은 모호하게 쓰였을까?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미래 세계에서 프리 크라임이라는 혁신적인 범죄 예방 시스템을
채택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이 시스템은 살인이 일어나기 전에 예측할 수 있는 프리코그(Precogs)로 알려진 세 명의 심령술사의 능력에 의존합니다.
가끔 헤로인에 찌든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예지능력을 지닌다고 합니다.
그들의 비전을 통해 경찰은 범죄가 발생하기 전에 잠재적 범죄자를 체포하여 도시에서 살인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습니다.
프리 크라임 경찰 반장인 앤더튼은 이 시스템을 확고히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예언에 따르면 그가 36시간 이내에 살인을 저지를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충격을 받고 자신이 왜 누군가를 죽이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앤더튼은 도망자가 되어 진실을 밝히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로 결심합니다.
자신이 속한 프리 크라임 팀의 체포를 피하면서 앤더튼은 시스템의 무오류성에 대한 답을 찾습니다.
그는 프리 크라임의 창시자인 이리스 박사로부터 시스템이 때때로 지배적인 예측과 다른 결과를 내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생성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실 앤더튼도 그러한 오류를 발견함으로써 모함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사실 인권의 보호를 위해 더 많은 범죄자를 감옥에 집어넣는 것보다는 한 사람의 무고한 죄인이 벌을 받게 해서는 안 된다는 법칙이 적용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프리 크라임 팀은 이 오류를 깊이 숨기고 있었고 그 책임자인 버제스에 의해 그 사실을 알게 된 앤더튼이 제거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앤더튼은 자유 의지로 예언되어 있던 살인을 하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요나에 의해 한 달 뒤 멸망하기로 되어 있던 니네베가 멸망하지 않게 된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의 마지막을 굳이 알려고 하지 말라고 하시며 그 정확한 시간은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하십니다.
만약 예언이 명확하면 그것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는 이들이 생깁니다.
버제스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어디나 시한부 종말론을 내세워 사람들의 재산 등을 가로챘던 사이비 교주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왜 예언은 모호한가?’를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멸망을 말씀하시다가 마지막 세상의 종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모든 예언이 이런 식입니다.
어떤 채널에 보니 ‘구약성경은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한 적이 없다’라는 제목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중에 한 지구 멸망의 이야기는 예언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예를 들어 구약에 이사야 7,14에는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인데 그 이름이 ‘임마누엘’이 될 것이라 합니다.
미카 예언서 5,1에서는 그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이라 예언합니다.
이 예언은 분명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이전 수백 년 전에 쓰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예언은 모두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할 위기에 처한 남 유다에 새로운 희망을 주는 말씀 안에서 나온 예언들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그리스도의 탄생 이야기는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언이 악한 이들에게 명확한 사실로 인지된다면 그들은 그것을 이용해 많은 이들을 미혹하게 될 것입니다.
악한 이들은 아무리 좋은 것도 악용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이 예언이 온전하게 해석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착한 뜻을 가진 이들에게는 교회나 성령 충만한 이들의 해석에 의해 도움을 받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이사야 예언자를 악인들 가운데 보내며 이렇게 예언하라고 하십니다.
“너는 가서 저 백성에게 말하여라.
‘너희는 듣고 또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마라.
너희는 보고 또 보아라.
그러나 깨치지는 마라.’ 너는 저 백성의 마음을 무디게 하고 그 귀를 어둡게 하며 그 눈을 들어붙게 하여라.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치유되는 일이 없게 하여라.”(이사 6,9-10)
악인들이 예언을 듣고 깨치면 큰일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헤로데를 방문했을 때 헤로데는
예언을 통해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이렇게 도움을 받았지만, 헤로데는 그 지식으로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이처럼 교회도 예언을 악인들에게 해석해 주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언제 세상이 멸망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그 명확한 표징을 말씀해주십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이방인들의 시대가 있을 것이고 그 시대가 다 찰 때가 올 것이란 예언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같은 예언을 하였습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신비를 알아 스스로 슬기롭다고 여기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 신비는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일부가 마음이 완고해진 상태는 다른 민족들의 수가 다 찰 때까지 이어지고 그다음에는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로마 11,25-26)
현재 이스라엘은 재건되고 있습니다.
아랍 민족들이 다 들고일어나도 지금의 이스라엘을 어찌할 힘이 없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들이 무엇이든 거의 휩쓸다시피 한다는 것은 우리가 다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 그들이 아직 그리스도께 완벽히 회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무서운 징조도 아직은 없습니다.
그때가 되면 정말 완벽한 마지막일 것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준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준비는 언제나 ‘회개’에 있습니다.
니네베 사람들은 회개하여 살았습니다.
회개는 에덴동산에서처럼 십일조를 봉헌하고 선교로 하느님 백성을 탄생시키는 본래의 일로 회귀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하는 이들에겐 마지막이 마지막이 아닌 희망이 날이 됩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카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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