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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2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11-22 조회수 : 209

기도하는 집: 로고스가 레마가 되는 집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쫓아내십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비판하십니다.
그리고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십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는 것이 곧 ‘기도’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때 부모님의 성전이었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L.A. 올림픽 때 다이빙 금메달을 딴 한 중국 선수는 자신이 금메달을 딴 것이 어머니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선수는 본래 다이빙 선수가 아니었고 100m 육상선수였습니다.
이 선수는 시합 때마다 자주 넘어졌고 성적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풀이 죽은 딸에게 언제나 이렇게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나는 네가 1등을 해서 좋은 게 아니야. 엄마는 네가 달리는 것만 보아도 너무 좋아.
넘어졌을 때 계속 넘어져 있지 않고 다시 일어나 달리는 것만 보아도 엄마는 너무 기쁘단다.” 
 
나중에 다이빙할 때도 엄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네가 다이빙대 위에 서 있는 것만 보아도 너무 기뻐.”
이 선수는 다이빙대에 설 때 항상 엄마의 이 말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긴장이 풀리면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엄마의 말이 이 다이빙 선수에게 등불이자 빛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이런 말을 해 준다고 그 말이 한 사람의 삶에 그런 힘을 줄 수 있을까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말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의 말은 그저 잔소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나를 사랑해주더라도 내가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 안에 강도가 살 때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기 전에 장사꾼을 채찍으로 쓸어내시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사랑의 말은 사랑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저 잔소리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나의 말이 영향을 미치게 하려면 그 듣는 사람이 나를 먼저 사랑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사랑하지 않게 만드는 자아와 삼구를 없애야 합니다. 
그 자아와 삼구는 나의 피로서만 죽습니다.
주님께서 장사꾼들을 내쫓기 위해 사용하신 채찍은 곧 그리스도의 피, 성령을 의미합니다.  
 
먼저 사랑으로 자아가 죽지 않으면 예수님은 분명 우리 안에 함께 계시는 것 같지만 우리가 그분을 벙어리 취급하는 꼴이 됩니다.
마치 ‘소리 없는 사랑’이란 태국 광고와 같습니다.  
 
한 여학생은 자신을 홀로 키우는 아버지를 싫어합니다.
듣지 못하여 말도 못 하는 장애인이고 돈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이 학생의 등에 “아버지가 바보 같은 장애인”이라는 글을 써서 붙이며 놀립니다.
자기가 그렇게 취급당하는 것이 아버지 때문이라 여깁니다.
자기가 왜 힘들어하는지 들어주지도 못하는 아버지는 이제 싫습니다.
그래서 비뚜로 나갑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언제나 자신이 청각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 미안하고 다만 딸이 착하게 커달라고 수화로 말해줄 뿐입니다. 
이런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딸은 더는 살고 싶지 않아 자살 시도를 합니다. 
 
피가 너무 빠져나가 위험한 상태입니다.
아버지는 자기 재산을 다 줄 테니 딸만 살려달라고 합니다. 
딸은 아빠의 피를 받고 살아납니다.
딸은 자신을 위해 피를 내어준 아버지를 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손을 잡습니다.
이제 아버지의 소리 없는 말이 딸의 마음에 들어가 딸을 착하게 만들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읽는다고 그것이 나를 변화시킬까요? 아닙니다.
내 안에 삼구가 살아있으면 여전히 삼구는 하느님을 원망하게 할 것입니다.
이 뱀은 태초부터 하느님께 대한 불만을 심었고 아담과 하와는 삼구를 다스릴 줄 몰랐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여 강도의 소굴이 되게 하였습니다.  
 
말씀 묵상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조건 묵상을 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먼저 하느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그런 상태라면 내 안의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는 은총으로 변합니다.
이것을 말씀이 로고스에서 레마가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전신 마비로 누워서 성경을 읽고 하느님을 받아들였던 미즈노 겐조의 시를 살펴봅시다.  
 
하느님 
오늘도 말씀해주세요
단 한 마디뿐이어도 좋습니다
내 마음은 작아서
많이 주셔도 넘쳐버려 
아까우니까요 
 
성경의 모든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왜 굳이 따로 또 말씀해 달라고 하는 것일까요?
이는 미즈노 겐조가 이미 로고스와 레마의 차이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미즈노 겐조는 불우한 상황에서도 감사를 찾았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말씀이 자신 안에서 로고스에 머물지 않고 레마가 되게 했습니다.  
 
내 안에 아무리 하느님의 말씀이 뿌려져도 그것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하늘에 뜬 별과
같습니다. 
세.육.마.로 땅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별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로고스이지만 그 별을 따라 결국에 만나게 되어 내 삶을 완전히 변하게 하는 그리스도는 레마입니다.  
 
내가 진정한 성전이 되어 하느님의 말씀이 로고스에 머물지 않고 레마로 변하게 하려면
그리스도의 피로 내 자아를 죽여야 합니다. 그렇게 죽은 결과는 ‘감사’로 나타납니다. 
 
감사가 아니면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 소용이 없습니다.
기도하는 집은 감사하는 집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레마로 변해 나를 감동하게 하고 변화시키는 집입니다.
그런 집만이 성전으로 인정받고 구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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