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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1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11-10 조회수 : 143

성직자들의 선생은 언제나 평신도들이었다 
 
 
오늘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렙톤 두 닢을 바치는 과부의 믿음과 길거리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는 종교 지도자들을 비교하시며 예수님은 사도들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평신도를 통해 당신 미래의 사제들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사실 교회의 운명은 사도들에게 달려있습니다. 교회는 성직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됩니다.
오죽하면 하느님께서 성전을 떠나시며 성직자들부터 죽이라고 하셨겠습니까? 
 
“너희는 저 사람의 뒤를 따라 도성을 돌아다니며 쳐 죽여라.
동정하지도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마라.
늙은이도 젊은이도, 처녀도 어린아이도 아낙네도 다 죽여 없애라.
그러나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건드리지 마라.
내 성전에서부터 시작하여라.”(에제 9,4-6)  
 
여기서 성전부터 시작하라고 한 것은 사제들부터 죽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쓰인 ‘성전’은 거룩한 성소를 의미하는 단어이고 성소는 사제들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제들은 사제들에 의해 거룩해지기 쉽지 않습니다. 다른 사제가 잘 살면 질투가 나지
본받기 어렵습니다.
여러 이유로 그런 사제처럼 되지 못하는 자신을 합리화합니다.
그러나 평신도가 자신보다 잘하면 ‘평신도도 이만큼 하는데, 나는 뭐지?’라며 뉘우치게 됩니다.  
 
예수님은 성 프란치스코를 통해 돈과 명예로 타락해가는 교회를 뉘우치게 하셨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교회를 재건하라는 하느님 음성을 듣기는 하였지만, 그저 시골의 작은 경당을 재건하라는 뜻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알고 봤더니 무너지는 라떼란 대성당을 어깨로 받친 인물이 되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부제품까지 받았습니다. 부제를 받아야 사람들 앞에서 강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는 평신도로 남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사제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성직자라는 명예를 바라지도 않으면서 성직자가 되어서도 살 수 없는 가난과 겸손의 삶을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주문모 야고보 신부를 생각해 봅시다.
박해받는 땅에 처음으로 들어와 미사와 고해성사를 해 주었습니다.
그를 보호하기 위한 우리 신자들의 노력은 대단했습니다.
평신도 최인길 마티아는 주문모 신부가 피할 시간을 벌기 위해 자신이 사제복을 입고 대신 체포되어 무수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쫓기는 주문모 신부를 목숨을 다해 보호한 강완숙 골롬바도 있습니다. 
 
그가 체포령이 발효된 주문모 신부를 숨겨주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수많은 가족이 다 위험할 수 있어도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주문모 신부는 목숨을 걸고 은총을 신자들에게
베풀었습니다.
주문모 신부는 압록강까지 도망하여 자신의 고국으로 넘어가기 전에 뉘우치고 돌아와 순교합니다.  
 
이탈리아 로피아노라는 동네에 사제들의 수련소(Scuola di formazione)가 있습니다.
사제로 일정 기간 살다가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낀 이들이 와서 스스로 권위와 명예와 재물을 다 내려놓고 낮은 자세로 수련받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을 만든 이는 키아라 루빅(Chiara Lubich)(1920–2008)이라는 평신도입니다. 
 
2차 세계 대전 중 1939년 로레토의 마리아 성지를 방문하는 동안 그녀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특별한 사명으로 초대하신다는 것을 느끼며 심오한 영적 소명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젊은 여성 그룹을 만들어 사랑과 일치에 초점을 맞춰 복음의 가르침에 헌신하는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지금 포콜라레 운동의 시작입니다.
저도 평신도들에 의해 시작된 ‘꾸르실료 운동’의 수원교구 지도신부를 6년간 하며 봉사자들의
모습을 보고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사제와 수도자들도 이 교육을 많이 받고 변화되고 있습니다.  
 
사제가 본받을 평신도가 줄어들면 교회는 더는 희망이 없어집니다.
사제는 그 위치상 쉽게 타락하게 됩니다.
그만큼 많은 대우를 받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평신도들이 눈에 보이게 큰일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복음의 과부처럼 조용히 자기 일을 하면 됩니다.  
 
성체의 기적을 온라인에 기록하여 시복을 받은 이탈리아 청년은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가
있습니다.
그는 16세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 이전에 3년의 공을 들여 세계에서 일어난 성체 기적들을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이는 인터넷은 잘 모른다며 말로만 강론하며 성체의 중요성을 말하는 사제들에게 커다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아이도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기 때문입니다.
과부처럼 조용히 섬깁시다.
그러면 주님께서 교회를 위해 그 모범으로 성직자들을 가르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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