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파견하시지만, 절대로 홀로 보내지 않으시는 주님!
저는 한때 정말이지 세상 소심하고 근심 걱정이 많던 사람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쫄보였습니다.
대범한 사람 보면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늘 삶에 여유가 없고 팍팍했습니다.
인생이 늘 우울하고 울적했고, 긴장과 초조의 연속이었습니다.
날씨가 흐리면 흐리다고 걱정,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걱정, 시험 잘 못 볼까봐, 걱정, 만남의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 혹시라도 내 꿈이 좌절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그리고 어떤 날은 걱정이 없어서 걱정, 특히 남 앞에 설 때, 뭔가를 발표해야 할 때, 근심 걱정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목숨이 아홉 있다는 고양이조차도 근심 때문에 죽는다.’는 속담이 남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근심 걱정의 연속이었던 어느 잔뜩 흐리고 우울한 날,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세수를 하다가, 세면대 거울을 들여다봤는데, 정말이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나이보다 열살은 더 들어 보이는 아주 낯선 제 얼굴이 거기 들어 있었습니다.
요즘은 정말이지 많이 변했습니다.
웬만한 일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큰일이 생겨도 ‘하늘 아래 별의 별 일이 다 생기는 거 당연하지.’ 하며 흘려버립니다.
수백 명 청중 앞에서도 그럭저럭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말씀하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성령이심을 굳게 믿고 그분께 맡기니 그런 것 같습니다.
물론 직무상 갖게 되는 작은 근심 걱정이 없지는 않습니다.
이번에 오시는 분들 식사 메뉴는 어떤 걸로 해야 하나 하는 걱정 정도, 어떤 때는 식사며 침실이며,
준비가 하나도 안 되었는데, 이백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버스 다섯 대로 밀고 올라오는 꿈도 꾸다가 깨어나서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합니다.
오늘도 많은 분들이 한 보따리 걱정을 이고 지고 살아갑니다.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겠는가?’ ‘혹시라도 사람들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어쩌지?’
‘나는 말주변이 없는데’ ‘나는 체력이 약한데’ ‘나는 남들 앞에 서면 완전히 쫄아 드는데’
이런 우리를 향해 세상 자상하신 예수님께서는 달래듯이 타이르듯이 말씀을 건네십니다.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주실 것이다.”(루카 12,11~12)
우리를 파견하시지만, 절대로 홀로 보내시는 주님이 아닙니다.
든든한 동반자, 강력한 협조자, 하느님의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걸어가십니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의식, 내 뒤에 그분께서 받쳐주고 계신다는 생각, 그분께서 지속적으로 도와주실 것이라는 확신이야말로 복음 선포자가 지녀야 할 최우선적인 마음 자세입니다.
우리가 비록 나약하지만, 성령께서 함께하시니 강건합니다.
우리가 비록 무지하지만, 성령께서 함께하시니 지혜롭습니다.
우리가 비록 죄인이지만 성령께서 함께하시니 성스럽습니다.
우리가 비록 죽음을 향해 걸어가지만, 성령께서 함께하시니 영원히 살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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