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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1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10-19 조회수 : 215

루카 12,8-12 

 

영적 광견병에 성령까지 모독하는 죄를 짓게 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는 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성령을 주러 오신 분이십니다. 성령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성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려는 선물입니다.

성령을 모독한다는 말은 하느님 사랑의 선물을 악하게 여긴다는 말과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으로 악령을 쫓아내실 때

그들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쫓아낸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성령을 모독하는 말입니다.

선물을 줄 때 선물 안에 담긴 사랑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악하게 되었다면 그 사람에게 희망은 없습니다.  

 

혹은 이런 것도 예가 될 것입니다.

첫 순교자 스테파노 부제가 하늘이 열려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계신 것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은총으로 보는 환시입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귀를 막고 스테파노를 끌어내어 돌로 쳐 죽였습니다.  

 

이런 두 예를 볼 때 성령을 모독하는 자들은 정말 용서받지 못할 것 같기는 합니다.

인간이 걸릴 수 있는 병 중에도 치사율이 100%인 유일한 병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공수병’입니다. 

개에게 물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물을 두려워하게 되어 결국 탈수로 죽게 된다고 합니다.  

 

물이 무슨 죄가 있을까요? 그러나 자기에게 피해를 준다고 여깁니다.

이것을 ‘피해의식’이라 합니다.

물론 물 안에 독이 들어있을 수도 있고 꿀이 들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물 자체를 두려워하여 마시지 않으면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이들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시는 것이 유다인들에게 무슨 해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절대적인 피해를 보는 것처럼 예수님을 증오합니다.

그들에게 있는 것은 ‘피해의식’입니다. 

 

또는 스테파노 성인이 하늘에서 하느님의 옥좌를 본다고 해서 그들에게 무슨 피해를 주는 것일까요?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면 죽는 것처럼

귀를 막고 그 말을 하는 사람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벼랑 끝, 상담』이란 책에 나온 피해의식 환자의 한 사례를 간단히 소개해 드립니다.

이 어머니는 아들은 지독히 미워하고 딸만 사랑합니다.

그 이유는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는 폭행을 당하고 그런 딸을 어머니가 과잉보호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여인은 남성에 대한 불신과 그와 반대로 여성에 대한 극도의 믿음이 커집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자기를 미워한다고 여깁니다.  

 

문제는 이 피해의식을 해결하지 못하면 그 대상이 모든 남성에게 확대되고 심지어는 아들에게까지 확대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을 학대하는 이유를 찾아야 했는데, 결국 찾아낸 이유가 이것입니다. 

“이 아이는 내 아들이 아니에요.” 

 

이 말을 들은 남편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내가 외도를?’ 그러나 아내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렇게 자신이 학대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싶었던 것입니다. 

DNA 검사를 받고 나서야 아들임을 인정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인 아들도 내가 가진 피해의식이 사랑의 선물로 보이지 못하게 만든 것입니다.  

 

또 물건을 살 때도 식은땀을 흘리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 사촌 동생과 고모로부터 반지를 훔쳐 갔다는 억울한 누명을 쓴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제 돈 주고 사도 나올 때 혹시 훔친 것 아니냐는 모함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런 피해의식은 누가 무엇을 주어도 좋은 의도로 줄 수 없다고 믿게 만듭니다.

돈 주고 사도 불안한데 거저 주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결국엔 이렇게 ‘사랑 자체에 대한 불신’이 생기고 자신에게 오는 모든 사랑을 거부하게 됩니다.

이것이 결국은 하느님의 크신 사랑도 믿지 못하게 만드는데 결국 그렇게 성령까지도 무시하는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자신에게 피해가 온다고 여기는 ‘피해의식’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결국엔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이 됩니다.

부모님은 인정하지 않아도 부모가 주는 음식까지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죽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은 욕해도 성령은 모독하면 안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피해의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바로 어렸을 때 받았던 상처에서 옵니다.

어렸을 때 당연히 받아야 하는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면 그것이 피해의식으로 자리 잡습니다. 

 

해리 할로우 박사의 ‘격리 원숭이’ 실험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어미의 사랑을 받지 못하게

격리하여 키운 원숭이는 세상 모든 존재가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무서운 존재로 여기며

무리에 섞이지 못하게 됩니다. 

혼자 자해하고 자위합니다. 

 

억지로 새끼를 낳게 하여 새끼가 자신에게 오더라도 그는 새끼까지도 자신에게 피해를 준다고 여겨 새끼를 밀쳐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사랑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을 받지 못해 사람까지 믿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피해의식이 있는 사람이 하느님의 엄청난 사랑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그 꼴로 자라고 내버려 둔 하느님을 거부하며 그분이 주시는 모든 사랑까지도,

심지어 성령까지도 거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사랑으로 입은 상처는 사랑으로밖에 치유되지 않습니다.

사랑에 대한 불신은 사랑을 다시 받음으로써 믿음으로 바뀝니다.

주위에서 부모보다 큰 사랑을 보여주는 이가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먼저 자신이 피해의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부족한 사랑을 채우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무엇보다 『하느님이시오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를 읽으며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구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랑에 가끔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린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주님의 크신 사랑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남이 안 해 주면 나라도 해야 합니다. 

사랑에 대한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모든 것이 은총으로 보입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 사랑을 믿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렸을 때 심어지고 자라나는 피해의식을 없애고 사랑을 믿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지식과 믿음을 증가시키십시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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