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루카 11,37-41
캄캄해도 희망하십시오!
일반 교우들뿐만 아니라 의외로 많은 사제 수도자들이 정말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 기념일을 맞이하시는 아빌라의 데레사 수녀님 같이 진한 하느님 체험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곤경 중에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느님께서는 깊은 침묵 중에 계시는 느낌을 받는답니다.
혹시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하느님 부재체험을 겪는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우리 가톨릭교회 안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영성생활의 대가들께서도
우리와 비슷한 그런 체험을 하신 기록이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사실 데레사 성녀의 인생에서 묵상과 관상을 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삶이었습니다.
이런 데레사였지만, 그분 역시 오랜 세월 동안 영혼의 깊은 밤을 헤매 다녔습니다.
깊은 하느님 부재체험과 더불어 오랜 방황과 고뇌를 거듭했습니다.
자서전에서 그녀는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잊혀졌다는 느낌, 고통스러웠던 세월의 흔적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한편으로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신다고 느꼈지만,
다른 한편으로 나는 세속을 찾아 헤매 다녔습니다.
세속적인 향락에 자신을 던질 때는 하느님께 빚진 것에 대한 기억이 나를 괴롭혔습니다.
하느님 일에 종사하면 세속적인 성향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나는 하느님과 세속 사이에 어느 것도 포기하지 못하고 가운데 끼어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이 그렇게 뚜렷하게 들리는데도 나는 그 소리에 따를 힘이 없었습니다.”
보십시오. 이 영성생활의 대가께서도 오랫동안 수녀복을 입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조금도 하느님께로 가까이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영적인 삶에로의 발 돋음이 얼마나 힘겨웠던지 그녀는 이렇게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오, 지루하고 고통스런 삶이여!
산다고 할 수 없고 완전히 버림받아 그 누구로부터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삶이여!
주여, 언제이옵니까?
아직 얼마나 더 계속 되려나이까?”
영적인 삶에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듯한 수직상승이 없습니다.
기도 생활 역시 힘 하나 안들이고 에스켈레이터 타고 올라가듯이 편안하게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한 발 한발 오르막 계단을 이용해 밟고 올라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오랫동안 지속된 깊은 영혼의 밤, 끔찍한 하느님 부재 체험, 지루한 자신과의 싸움이 데레사의 신앙 여정 안에 계속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데레사는 영혼의 무미건조함에 대해서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아주 소중한 깨달음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귀여워하시는 이들을 고생길로 이끄시고 많이 아끼실수록 많은 고생을 내리십니다.”
“최고 단계의 완전성은 내적 위로나 고상한 황홀감이나 현시, 예언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뜻을 그분의 뜻에 합일시키고 그분의 뜻을 우리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상태입니다.
구원은 하느님의 뜻과 우리의 뜻을 동일시하는데서 출발합니다.”
“여러분에게 청합니다. 여러분의 이성을 가지고 그분에 대해 생각하지 마십시오.
많은 개념들도 끄집어내지 마십시오.
대단하고 복잡한 명상도 하지 마십시오.
그분을 바라보는 것 외에 나는 아무것도 청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성(城)깊은 곳에 있는 궁방으로 들어가는 거대한 은총의 문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알고 자신을 알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통과해야하는 문입니다.
좋은 벗과 함께 있기를 원하는 것, 하느님과 단둘이 우정을 나누기를 원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리고 데레사는 오늘도 영혼의 깊은 밤 속에 하느님 부재 체험을 겪으면서 지루한 영적 투쟁을 해나가는 우리에게 역사에 길이 남을 소중한 조언을 해주고 계십니다.
“무엇으로도 마음을 흐트러트리지 말며 무엇에도 놀라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지나가나 하느님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인내는 모든 것을 성취합니다.
하느님만을 차지한 사람에게는 부족할 것이 없으니 하느님만으로 충분합니다.”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영혼의 어두운 밤, 하느님 부재 체험, 버림받은 느낌이 다가 올 때 마다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가 있습니다.
캄캄해도 희망하는 일입니다.
언젠가 이 어둠이 걷히고 밝은 대낮이 다가오는 것을 확신하는 일입니다.
그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앞길이 막막해도 우선 내 발에 묻은 진흙을 털어내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로 내 등 뒤에서 나를 떠받히고 계심을 확신하는 일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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