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등산’을 선호하지 않지만, 신학생 시절에 동기들, 신학교 신부님들과 함께 ‘설악산 대청봉’에 올랐던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당시 저희는 ‘오색약수터’에서 출발하여 ‘대청봉’에 올라간 다음 ‘비선대’ 방향으로 하산했는데, 오색약수터에서 대청봉까지의 길은 ‘러닝머신’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이 비슷한 풍경과 산행길은 도대체 언제 끝나는 것인지….’ 막연한 궁금증을 안고 오르다 출발한 지 1시간 정도 지나 쉬는 시간에 그날 산행을 이끈 신부님께 여쭤봤습니다.
“신부님, 얼마만큼 올라가야 하나요?”
“많이 올라왔어. 조금만 더 올라가면 돼.”
신부님의 대답은, 등산이 익숙하지 않던 저에게 왠지 모를 ‘성취감’을 주었고, 다시 기운을 차린 저는 한 시간을 더 부지런히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제 눈엔 여전히 똑같은 풍경이었고, 다음 쉬는 시간에 같은 질문을 하니 신부님 역시, “많이 올라왔어. 조금만 더 올라가면 돼.”라고 똑같이 대답하셨습니다.
전 ‘반신반의’하며 한 시간을 더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다음엔 대청봉에서 하산하는 등산객들에게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마치 신부님과 약속한 듯, 그분들의 대답도 한결같았습니다. “많이 올라왔어요.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이때부턴 ‘속았다.’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고, ‘끝까지 가보자.’라는 오기도 조금 생겼습니다. 그렇게 한두 번을 더, 똑같은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은 후에야, 비로소 설악산 대청봉에 도착했습니다.
정상에 올라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비선대 방향으로 하산하면서부터, 쉬는 시간마다 떠오른 저의 반복된 질문은 머릿속에서 새하얗게 사라졌습니다. 생전 처음 본 비선대의 절경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어떠한지 가르쳐 주었고, 저는 언제 힘들었냐는 듯 하산하는 내내 그 절경에 감탄했습니다. 그날 들었던, ‘많이 왔고, 조금만 더 가면 돼.’라는 대답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믿고 따르길 잘했다.’라는 생각을 지금까지도 마음속에 간직하고 떠올려보곤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셔서 거룩하게 변모하십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위해 고통을 받으셨음을 기억하는 사순 시기에, 우리는 왜 이 대목을 읽을까요? 아마도 그건,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또 사순 시기를 지내며 자신의 나약함에 좌절할 때, 잠시 눈을 들어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해 주신 곳이 ‘분명히 있음’을 떠올리기 위함일 겁니다.
한 가지 더,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가 끝난 후에,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라고 전합니다. 거룩한 변모 후에도 예수님이 제자들 곁에 계셨다는 사실은, 우리가 지상 여정을 마칠 때까지 예수님은 늘 우리 옆에 계시며, ‘많이 올라왔어, 조금만 더 올라가면 돼.’라고 말씀하기 위함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