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성녀 안젤라(1846~1932)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있습니다. 성녀의 몸은 옆을 향하고 있는데 얼굴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커다란 눈에는 따뜻한 자애로움이 가득하며, 입가에는 살짝 웃음을 머금고 있습니다. 평생을 애덕과 가난 그리고 겸손으로 살아온 모습입니다.
안젤라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세비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세비아는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인 중세 고딕 양식의 ‘세비아 대성당’으로 유명합니다. 성당 안에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가져온 금으로 만들었다는 예수상이 있습니다. 안젤라의 아버지는 수도회에서 요리사로 일했고, 어머니는 세탁일을 했습니다. 부모님 모두 신앙심이 깊었고, 자녀들에게 늘 모범을 보였습니다. 어머니가 성당 제대에서 봉사하면 어린 안젤라는 성모님 앞에서 묵주기도를 드렸습니다. ‘성모 성월’ 5월이 되면 가족들은 집안에 작은 제대를 차려놓고 묵주기도를 봉헌했습니다. 안젤라에게는 신앙을 바르게 이끌어준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안젤라가 어렸을 때 일했던 신발 가게의 주인이었습니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매일 가게에서 종업원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드리고 성인전을 읽어주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성인을 만드는 분’이라는 놀라운 명성을 가진 신부님인데, 안젤라에게 오랫동안 영적 지도를 해주었습니다.
안젤라는 수녀회에 들어가고 싶어 ‘맨발의 가르멜 수녀회’에 입회를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몸이 약해 수도 생활하기에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신부님은 실망한 안젤라에게 수녀회 대신 가난한 병자들을 돌보라고 권했습니다. 안젤라는 신부님의 권고대로 병들고 가난한 사람을 돌보았습니다. 그러나 수녀회에 대한 소망이 계속 남아있어 다시 ‘애덕의 수녀회’에 입회를 신청했습니다. 수녀회는 안젤라의 입회를 일정 수련 기간을 전제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안젤라는 건강 때문에 부득이 수녀회를 나와야 했습니다.
안젤라는 십자가 밑에서 ‘홀로’ 서원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기도 중에 환시를 통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십자가를 본 것이었습니다. 안젤라는 그 환시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습니다. 그 빈 십자가 자리에 자신이 매달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많은 여성이 가난한 사람들을 함께 도우려고 안젤라를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십자가의 수녀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수녀회는 애덕과 가난과 겸손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정성껏 돌보았습니다.
‘십자가를 진 삶’과 ‘십자가로 들어간 삶’을 생각해 봅니다. 어떤 삶이 하느님께서 더욱 원하시는 삶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