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이 가난한 사람들
11월 1일은 ‘모든 성인 대축일’이고 2일은 ‘위령의 날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천국에 있는 성인들과 정화 중에 있는 연옥교회의 영혼들을 기억하며 모든 성인의 통공(communion of saints)을 나눕니다. 전통적으로 모든 성인 대축일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드러내는 큰 축제이기에, 그 전날 10월 31일 저녁부터 ‘거룩한 전야’ 축제일로 지냈습니다. 이 전야제가 바로 ‘핼러윈 데이’입니다. 성인을 뜻하는 고대 영어 ‘할로(hallow)’와 저녁이라는 단어 ‘이브닝(evening)’이 합쳐져서 ‘모든 성인들의 전야(all hallows eve)’가 되었고, ‘핼러윈(halloween)’으로 축약된 것입니다.
핼러윈 때 아이들이 무서운 가면이나 복장을 한 채 거리를 행진하고, 호박등이 켜진 집마다 방문하여 사탕을 요구하는 것은 고대 켈트족의 전설과 중세의 풍습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켈트족은 겨울이 시작되는 11월이 되면 저승의 귀신이나 망령들이 지상에 출몰하기 시작한다고 믿고, 그 귀신이나 망령보다 더 무섭게 변장을 하고 야단법석을 떨어서 그러한 존재들을 쫓아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탕을 요구하는 것은 중세 시대 연옥 영혼들을 기억하는 ‘위령의 날’에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이 집마다 돌아다니며 ‘영혼들을 위한 기도’를 바쳐주면, 그 기도에 대한 답례로 ‘영혼의 단 빵’을 주었던 것에서 유래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이방 종교의 전설과 문화를 복음으로 대체하고 그 의미를 새롭게 밝혀 주는 토착화의 과정을 끊임없이 밟아 왔습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허물어진다고 생각하던 켈트족의 전설적 믿음을 모든 성인의 통공 교리로 포용하여 승화시킵니다. 즉 ‘지상의 순례하는 교회’에 속한 신자들이, 천국교회와 연옥교회와 소통하고 기도하는 전통을 통해서 미신적인 공포와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에게 평화와 위안과 희망을 준 것입니다. 특히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와 가난한 이들에게 특별한 음식을 나누어 주는 아름다운 전통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은 코로나19로 인한 공포와 우울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예수님의 ‘참행복’ 선언은 희망을 북돋아 주는 역설적인 약속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직역하면 ‘영(靈)이 가난한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차지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십니다. 인간은 영이신 하느님께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요한 4,24)하면서 끊임없이 사랑이신 하느님(1요한 4,16)의 은총을 충만하게 받아야 하는 가난한 영적 존재입니다. 영과 진리 안에서 하느님과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신앙인들은 영원히 그리고 끊임없이 베푸시는 사랑의 은총 안에서 유한한 세상의 고통과 시련을 충분히 이겨낼 힘과 용기와 희망을 간직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가난한 영으로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충만한 은총을 서로 나누며 이 시기를 다 같이 이겨냅시다.
글 | 조한영 야고보 신부(제2대리구 복음화2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