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협화음도 쓰이기 나름입니다. 어울리기 힘든 음들도 연주자의 손에 따라 하나로 뭉쳐질 때 음악은 더 풍성하게 변합니다. 우리 인생에도 불협화음과 같은 사건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힘들어도 그 순간을 내 삶에 녹여내는 이들은 삶을 더욱 맛깔스럽게 살아갑니다.
복음 속 나병 환자를 바라봅시다.
‘하고자 하시면’이라는 말은 인생의 불협화음을 화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당장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이 병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예수님께 겸손히 묻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면’과 같은 마음보다, ‘주님께서 최대한 빨리해 주시길’ 바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인생 모든 순간 모난 곳이 없길 바라고, 작은 시련도 받아들이기보다는 하느님을 원망하는 쪽을 선택할 때가 많습니다. 곧 ‘겸손’이란, 단순히 자신을 낮추는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마음을 여는 행위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그 과정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복음 속 나병 환자가 ‘하고자 하시면’이라는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와 고통이 있었겠습니까. 저는 욥의 친구들처럼 아픈 이들에게 빨리 그 고통을 받아들이고 깊이 기도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모든 과정 안에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과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나병으로 고통받았던 그 사람이 주님께 다가가 ‘하고자 하시면’이라는 말은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인생의 불협화음 속에서 혼자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누군가 인생의 불협화음 속에서 혼자 괴로워하고 있다면, 기꺼이 다가가는 신앙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으신 예수님과 예수님을 본받아 타인을 위해 기쁘게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우리 모두 삶의 불협화음을 조화롭게 녹여낼 수 있기를 희망하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