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저는 현재 본당 사목을 맡고 있지만 그땐 ‘해외 선교 사제’가 되기 위한 연수 기간이었고, 그중 약 한 달은 ‘남수단’에서 실습을 했었습니다. 그 기간이 끝나갈 즈음 저는 ‘남수단’에서 선교 활동하던 선배 신부님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에서 20여 년간의 선교 활동 후 귀국을 앞둔 한국인 수녀님과 함께 1박 2일의 여정으로 이태석 신부님이 활동하셨던 ‘톤즈’에 다녀왔습니다.
그 여정 중,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에서 봤던 톤즈 공동체에 발을 내딛고, 이태석 신부님의 흔적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음을 눈으로 보며, ‘뭉클함’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수원교구 선교지인 ‘쉐벳’에서 ‘톤즈’를 오가던 ‘비포장도로에서의 추억’도 종종 떠오릅니다.
‘쉐벳’에서 ‘톤즈’까지 가려면 자동차를 타고 몇 시간을 이동해야 하는데, 남수단에는 ‘비포장도로’가 많다 보니 차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이 한국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것은 꼭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었으며, 속력을 높이면 몸이 붕 뜨며 자동차 천장에 머리를 박기도 했습니다.
그런 길을 오가며, 아프리카에서 20년 동안 선교했던 수녀님은 선교지에서의 ‘경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 마치 ‘손주’가 되어 ‘할머니의 경험담’을 듣는 것만 같았습니다. 전등이 없어 촛불에 의지해야 하는 어두컴컴한 밤에 동료 수녀님이 라면이 생각나 페트병에 담긴 액체를 냄비에 넣고 끓였는데 알고 보니, 그 액체는 ‘물’이 아닌 ‘휘발유’였던 아찔한 경험. 또, 유독 마음고생을 시킨 한 아이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 은혜를 갚았던 경험 등을 들으며 크게 감동했습니다.
왜 저는 수녀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을 했을까요? 수녀님이 아프리카에 관한 지식이 많아서? 설명을 잘하셔서? 당시, 그 수녀님은 건강상의 이유로 한국에 귀국해야 했는데, 선교지를 떠나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슬프다며 이야기 중에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아마, 선교지에서 ‘사랑’을 품고 사셨기에, 제게도 그 ‘큰 감동’이 전해졌을 겁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몹시 놀랐다.”고 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깜짝 놀라는’ 정도가 아니라 ‘넋을 잃을’ 정도의 말로,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크게 매료되었음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복음에선 그 이유를 예수님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하죠. 여기서 ‘권위’는 본디 ‘존재로부터’, 다시 말해 ‘하느님으로부터’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권위’가 있을 것입니다. 경력, 능력, 학력, 인간관계 등. 이런 것들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권위는 ‘하느님으로부터’ 즉, ‘사랑’에서 비롯되었고, 우리도 ‘그 사랑’에서 무언가를 시작할 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름다운 전망을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 교황 프란치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