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문도’(1175~1275) 성인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페냐포르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덕분에 그는 훌륭한 교육을 받아, 공부하기를 즐겼습니다. 서른 초반에 교회법 박사학위를 받은 라이문도는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에서 교회법을 가르쳤습니다. 볼로냐 대학은 세계 최초로 설립된 대학으로, 당시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곳이었습니다. 라이문도는 그런 대학의 교수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바르셀로나의 주교가 볼로냐에 왔다가 그의 명성을 듣고는 라이문도 신부를 만나 “바르셀로나 주교좌대성당의 성직을 맡아달라.”라고 부탁했습니다. 라이문도 신부는 주교의 청을 받아들여 바르셀로나로 가서 부주교를 맡아 직을 성실하게 수행했습니다.
그 후, 라이문도 신부는 스페인 국왕 야고보의 고해 신부가 됩니다. 그때의 일입니다. 왕이 어떤 부인과 가깝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라이문도 신부는 이를 알고 국왕에게 직언했습니다. “폐하에 대한 소문이 좋지 않습니다. 사귀는 부인과 즉시 헤어지십시오.” 국왕은 그 말을 듣자 화가 나, 라이문도 신부를 마요르가 섬으로 유배를 보냈습니다. 라이문도 신부는 바닷가에 서서 하느님께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그러고는 망토를 펼쳐 그 위에 올라탔습니다. 그랬더니 망토는 배가 되어 그를 무사히 바르셀로나로 실어다 주었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라이문도 신부의 명성을 듣고 그를 로마로 불렀습니다. 교황은 라이문도 신부에게 비서 신부와 고해 사제의 직을 맡겼습니다. 라이문도 신부는 맡겨진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습니다. 그의 성실성을 입증하는 일화는 또 있습니다. 교황청 앞에는 늘 가난한 사람들이 와서 자선을 청했습니다. 경비병들이 이들을 쌀쌀맞게 대하는 모습을 라이문도 신부가 보게 되었습니다. 교황이 라이문도 신부에게 고해하는 날, 라이문도 신부는 교황에게 보속을 주었습니다. “교황청 앞에서 자선을 청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교황청의 모든 사람은 따뜻하게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이를 보속으로 드립니다.” 교황은 그 보속을 듣고는 무척 기뻐했습니다. 라이문도 신부가 직무에 성실히 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황은 즉시 경비병을 비롯한 교황청 사람들에게 자선을 청하는 모든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라이문도 신부는 스페인으로 돌아와 이슬람교도의 개종을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그리하여 1만 명이나 되는 이슬람교도가 세례를 받고 가톨릭으로 개종했습니다. 성인은 어떤 상황에서든 성실했습니다.
성실은 ‘정성(誠)을 다하는 것’을 뛰어넘어 ‘열매(實)를 맺는 것’입니다.
글ㅣ백형찬 라이문도(전 서울예술대 교수,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