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삶은 ‘채움의 삶’입니다. 곧, 하느님으로 가득 채워가는 삶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내게 필요하지 않은 것도 채우려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면의 결핍 하나쯤은 가지고 있겠지만, 저의 내면의 결핍은 ‘물질적인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어린 시절 채우지 못했던 ‘컴퓨터에 대한 욕심’이었습니다. 사제가 된 후 저는 가장 좋은 컴퓨터를 구매했습니다. 그러곤 욕심이 사라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걸 얻어 비워진 줄 알았던 ‘욕심의 공간’은 어느새 다른 욕심으로 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때로는 핸드폰으로, 스마트 워치로, 패드로 장르만 바뀔 뿐 또 다른 전자기기로 넘어가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 우연치 않게 시작한 ‘유튜브 활동’은 또 다른 욕심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방송장비에 대한 욕구였습니다.
이것저것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자 그와 관련한 짐도 늘어났습니다. 짐은 부피도, 개수도 늘어나며 제 걱정거리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간 이동을 해야 하는데…’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저는 새로운 임지로 인사발령이 났고, 짐을 싸기 시작하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옷과 책, 방송장비와 각종 전자기기들이 매우 많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갓 사제가 되었을 때는 짐 없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는데, 그때보다 배는 많아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1년 동안 한 번도 손이 가지 않은 옷을 버렸습니다. 사기만 하고 펼쳐보지 않은 책도 정리했습니다. 욕심으로 구입했던 전자제품은 나누거나 판매했습니다. 짐을 비워내기 시작하니 제 마음마저 정리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들과 내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이 나의 욕심으로 채워져 있으니, 다른 것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비우고 나서야 비로소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대림 제3주일 복음에 나오는 요한 세례자는 ‘비움의 삶’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적인 것을 끊고 광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 세례자는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 알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채우기에만 급급한 삶이었습니다. 저 역시 ‘욕심’으로 채워진 주변으로 인해, 저에게 정작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비워내야 합니다. 비워야 비로소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비단 이것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요. 내 신앙의 현실은 어떠할까요?
이상은 현실의 반영입니다. 현실이 준비되지 않으면 이상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 주변에 신앙적인 요소가 없으면서 신앙인이 되려 한다면, 그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신앙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신앙적이지 않은 것들을 비워내어야 합니다.
나에게 불필요한 것을 잘 살펴 비워내고, 나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 넣는 삶을 살도록 노력합시다.
글ㅣ조윤호 윤호요셉 신부(봉담 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