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존엄’합니다. 하느님의 모상인 우리는 모두가 평등하며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권’입니다. 하지만 문명이 시작된 이래 인간 세상은 항상 계급을 나누고, 보다 크고 강한 것을 본능적으로 추구했습니다. 이러한 경쟁에서 ‘약한 이’들은 항상 배척당하고 무시당하며 버림받았습니다. 그야말로 ‘출신, 성별, 지위, 재산, 학력’ 등 여러 배경에 의해 인권을 빼앗긴 사람들이 항상 존재했던 것입니다.
성 라자로 마을의 한센 가족들도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살아온 과거가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한센인의 날’ 행사 참석 차 마을 가족들을 모시고 소록도에 다녀왔습니다. 그곳 전시관에서 본 한국 한센인들의 역사는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1916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소록도에 세워진 ‘자혜의원’은 훗날 ‘소록도갱생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는데, 그 확장공사 과정에서 한센인들은 불편한 몸으로 강제노역과 폭행,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이후 많은 이의 노력으로 한센인들의 인권문제가 대두되기 전까지 ‘한센인은 소록도에서 세 번 죽는다.’라는 표현이 있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한센병이 발병하면서 모든 꿈과 희망에서 죽게 되고, 두 번째는 강제로 생체 실험을 당하여 죽으면 시신 해부를 당하며 죽게 되고, 세 번째는 장례 후 강제 화장을 당하며 죽게 된다.’라는 의미입니다. 병의 증세만으로도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강제노역을 시켰고, ‘유전된다.’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한센인 부부를 분방시키는 것은 물론, 강제 단종 수술과 강제 낙태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내용이 전시관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감금실’ 벽에는 한센 환우가 쓴 시가 붙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죄가 없어도 불문곡직하고 가두어놓고
왜 말까지 못 하게 하고 어째서 밥도 안 주느냐
억울한 호소는 들을 자가 없으니
무릎을 꿇고 주님께 호소하기를
주님 말씀에 따라 내가 참아야 될 줄 아옵니다.
내가 불신자였다면 이 생명 가치 없을 바에는
분노를 기어이 폭발시킬 것이오나
주님으로 인해 내가 참아야 될 줄 아옵니다.
이 속에서 신경통으로 무지한 고통을 당할 때
하도 괴로워서 이불 껍질을 뜯어
목매달아 죽으려 했지만
내 주님의 위로하시는 은총으로 참고 살아온 것을
주님께 감사하나이다.
이렇게 철저히 인권이 무시당하고 말도 안 되는 처우를 받으며 살아온 한센인들에게도 요한 세례자 같이 ‘주님의 길을 마련하고, 그분의 길을 곧게 내신’(마르 1,3)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마가렛 선생님, 마리안느 선생님, 강칼라 수녀님, 이경재 신부님, 엠마 프라이싱거 여사 등 입니다. 이분들은 한국 한센인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이사 40,1)이라는 제1독서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신 분들이셨습니다.
글ㅣ한영기 바오로 신부(성 라자로 마을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