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제가 복부 초음파 검사를 해드렸던 환자가 다른 곳에서 췌장암 의심 판정을 받았다며 다시 내원하셨습니다.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혹시 병변을 놓친 것은 아닌지 마음이 초조해졌습니다. 심장 검사를 하다가 우연히 췌장에 이상이 발견되어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가져온 단층 촬영 영상을 보니 췌장의 일부가 희미한 음영을 보이긴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초음파를 확인했는데 다행히 이상 소견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섣부른 판단일 수 있으나 암보다는 부분적 췌장염의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씀해 드렸습니다. 암이 의심된다는 걱정과 스트레스 때문인지 환자는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이 생겼습니다.
얼마 후 환자는 대학병원 진료 후 저에게 다시 오셨습니다. “괜찮대요!” 그동안 마음이 얼마나 초조하셨을까요?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하니 이제 ‘덤으로 사는 세상’이라고 하시며 좋아하셨습니다.
성당에서 열심히 봉사하시던 분이 계십니다. 어느 날 갑자기 흉통이 시작되어 지역 종합병원에 가시게 되었는데 대동맥이 파열됐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치사율이 높은 질병이고 환자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담당 의사는 환자를 직접 대학병원으로 이송하는 조치를 하셨다고 합니다. 장시간의 수술을 견디어 내시고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형제님을 만났습니다. “정말 하늘나라 가실 뻔했지 뭐예요. 그리고 담당 의사 선생님도 대단하시네요.”라는 제 말에, “그러게 말이에요. 하느님께서 좀 더 살다 오라고 하신 것 같아요.”라고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자전거를 타고 성당에 다니실 정도로 건강을 회복하셨습니다.
두 분은 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거의 하느님을 뵈러 하늘나라 문턱까지 다녀오신 분들입니다. 조금 더 세상에서 봉사하면서 가족들과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고 오라는 하느님 은총의 선물을 받으신 것이 분명합니다. 이분들은 ‘덤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어떠한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고 느끼실까요? 아마 눈부시게 찬란한 아침일 것이고, 너무나도 감사한 한 끼 식사일 것이며, 감탄하는 눈으로 석양을 바라보는 매일이 ‘탐욕과 시기’보다는 ‘용서와 포용’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누구나 ‘때’가 되면 하느님 나라에 다가갈 것입니다. 죽음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과 승천을 믿는 우리는 적어도 세상을 바라볼 때 믿지 않는 이들과는 다른 눈과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럴 때 우리는 ‘덤으로 살아가는 삶’처럼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변할 때 세상이 변할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고, 모두가 행복하고 기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글ㅣ유권 안토니오(내과·영상의학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