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본당에 있을 때, 형제 친목회 총무를 맡으신 분이 계셨습니다. 눈에 잘 띄지 않던 분이셨지만, 본당 일이 있을 때면 남들이 주저하는 일에 항상 나서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님은 본당에서 어떠한 단체장도 해본 적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시간이 지난 뒤 그분을 상임위 총무로 임명하였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친목회 총무일 때나, 상임위 총무일 때나 달라진 모습이 없었습니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저는 형제님을 온전히 믿게 되었고, 더 많은 것을 함께 하고자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나에게 얼마를 주시든 상관없이,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맡겨주십니다. ‘작은 것’에 성실하지 못한 이에게는 ‘큰 것’을 맡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탈렌트의 비유가 나옵니다. 주인은 세 명의 종에게 각각 다른 금액을 맡기게 됩니다. 각각 다른 금액을 맡기는 이유는, 금액의 많고 적음의 차원이 아니라 각자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능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결국, 금액은 차이가 있으나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에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
또한, 주인과 종의 입장 차이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로마법에 따르면, 주인은 종에게 자신의 재산을 맡겨 불릴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종은 거기에 순종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으로 주인에게 보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 탈렌트를 받은 종은 그것을 땅에 숨겨뒀다가 주인이 맡긴 금액 그대로 되돌려 줍니다. 주인은 그 종에게 한 탈렌트를 기대하였지만,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종은 주인이 모진 분이라고 착각하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주인에 대한 올바른 관계 정립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잠언의 마지막 내용인 ‘훌륭한 아내’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제2독서인 테살로니카 첫 번째 서간에서는 ‘도둑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결국, 전례문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사명에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노고를 잊지 않으시고 더 많은 것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준비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 신뢰를 바탕으로 내가 가진 최선의 노력을 보일 때, 내가 가진 것의 몇 갑절에 이르는 보상을 받게 됩니다.
글ㅣ조윤호 윤호요셉 신부(봉담 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