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가장 많이 했던 운동은 농구였습니다. 공 하나, 그리고 시간과 마음 맞는 친구 몇 명만 있으면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종목이기 때문이지요.
20대 때는 틈만 나면 모여서 농구를 했던 ‘고교 동창 농구 동아리’가, 30대 들어 각자의 삶의 터전과 방식이 달라지면서 서서히 뜸해지더니, 이내 가끔 저녁 모임만 하고 더 이상 농구모임은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제가 아직도 가끔 농구한다고 하면 ‘오~’ 하는 탄성만 할 뿐입니다.
전문의가 된 후 지방 신설대학에 근무할 때는 교수 중에서 선수들을 모집해 의대 농구동아리와 매년 사제 농구대회를 진행하였습니다. 1년에 두 번 있는 경기 며칠 전부터는(창피당하지 않기 위해)개인 연습을 했고, 그 덕에 농구와의 인연을 끊어지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11년 전 대학병원 정형외과 대항 농구대회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최고령 선수로(당시 50대), 20대 젊은이들과 함께 코트 위를 누볐습니다. 그렇게 여러 해를 이어온 ‘정형외과 농구대회’에 올해는 60대 ‘영감 선수’로 출전, 점프슛도 하나 성공시켜서 후배들의 갈채와 함께 노익장(老益壯) 소리를 들으며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 ‘60대 농구대회’ 참가 제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경기 당일, 대회가 열리는 과천 관문체육관에 도착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만 60세 이상의 선수로만 구성된 농구팀이 6개나 되었고, 출전 선수 중 30%는 저보다 나이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모두 어찌나 농구를 잘하는지, 저는 코트에서 뛰는 동안 단 한 골도 득점하지 못하고 실수만 연발하였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넓은 줄도 모르고 최고령 출전 기록을 이어간다면서 후배들에게 엄청 ‘영감 티’를 냈던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지며 ‘겸손’을 배우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기왕 출전했으니 최선을 다하자며 열심히 뛰어다닌 결과 ···
다음 날 아침, 무릎이 퉁퉁 부어 구부리지도 못하고 절뚝거리는 자신을 발견한 저는 일단 압박 보호대를 착용했습니다. 며칠 뒤 주일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신부님께서 제 무릎 보호대를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무릎은 어쩌다가요?”라고 물었습니다. “농구 게임을 뛰었더니 이리되었습니다.”라고 대답하니, 신부님은 “아직도 농구? 대단하시네요. 어쨌거나 걱정이군요….”라는 우려의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럼 그 무릎은 누가 고치나요?” 제가 정형외과 의사임을 아시는 신부님이 갑자기 장난기와 유머가 섞인 질문을 하셨습니다. 잠시 후 저는 답했습니다. “하느님이 고쳐주십니다.”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다.”(공동번역 마태 19,26)라는 성경 말씀처럼 치유의 능력은 오로지 하느님에게만 귀속되며, 의사는 그저 치유에 가장 좋은 조건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골절된 뼈가 곧게 그리고 빨리 잘 붙을 수 있도록 수술이나 석고 등으로 고정하는 것이 바로 그런 예입니다. ‘저희는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공동번역 루카 17,10).’
글ㅣ김용민 베드로(국립경찰병원 정형외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