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되기 위해서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환자를 진찰할 때는 덜컥 겁부터 났습니다.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엄습해 온 것입니다. 그래서 군입대 후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레지던트 지원을 망설일 때, 선배가 ‘왜 고민하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환자를 보는 것이 두렵다.’라고 대답하니, “환자는 혼자 보는 것이 아니야. 윗년차 레지던트 선배와 교수님도 함께 환자를 돌보고 또 공부하면서 진료하니까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함께 고민하고 공부하며 진료했던 시간이었기에, 결국엔 두려움보다는 보람찬 시간이 되었습니다.
몇 년 전 추석 연휴를 앞두고, 소화가 안 되어 배가 아프다는 환자가 찾아 왔습니다.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췌장암이 의심되는 소견이었습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암’이라는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면 행복해야 할 연휴가 온 가족이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한 우울한 시간이 될 것이 뻔했습니다. 병명을 이야기하지 않은 채, 배가 아프지 않고 소화가 잘될 수 있는 약을 처방하고, 명절 잘 보내신 후 내원하시라고 했습니다. 명절 연휴가 끝나고 내원한 환자는 속이 좀 편해졌다는 말과 함께 가족들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명절 연휴를 앞두고 췌장암이 의심된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음을 사과하며 앞으로의 치료 계획에 대해 설명해 드렸습니다.
환자는 대학 병원에서 췌장암 진단을 받고 1차 항암 치료 후, 주사 부위 소독을 위해 다시 내원하셨습니다. 아직은 항암 치료가 견딜 만하시다며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지어주셨습니다. 병원을 내원할 때마다 늘 남편과 함께 오십니다. 걱정스러운 얼굴의 남편에게 괜찮다며 오히려 다독이십니다. 또, 가족들이 한마음으로 응원해 줘서 감사하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주사 부위를 소독하는 작은 일이지만 환자의 쾌유를 위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습니다.
세상을 혼자 살아가는 것 같지만, 결코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옆에서 같이 고민해 주고, 같이 응원해 주고, 같이 아파해 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아프고 힘들고 어려울 때 기댈 수 있고, 기대어 줄 수 있는 그런 이웃들과 우리 자신은 서로 모두에게 소중한 보물입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마음을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바라보실 것입니다.
글ㅣ유권 안토니오(내과·영상의학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