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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아나’의 추억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3-10-06 08:33:08 조회수 : 343

202033일은 아내 율리아나가 하늘나라로 간 날입니다.

향년 77, 요양 병원 생활 만 7년에 보람도 없이 밤 12시에 중환자실로부터통보받았습니다.

졸린 눈이 말똥해지고 정신이 번쩍 들어, 전에 명동대성당 바자회 때 마련해 두었던 수의를 차에 싣고 정신없이 달려갔습니다.

 

새벽 1시 반, 병원에 도착하여 이미 와 있던 아들들과 만났습니다. 곧바로 상조회사에 연락하여 평택장례문화회관에 장례식장을

마련하였습니다.

 

다음 날 저녁, 바빠서 못 오신다던 본당 신부와 연령회원들이 평택까지 오셔서 장례미사를 해주셨습니다. 지금도 잊지 못할 은혜이며 도와주신 데 대하여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돌이켜보면 율리아나는 나의 은인입니다.

원래 유교 집안이었던 저를 성당으로 이끈 것이 율리아나였고,

이사 오기 전 우이동 성당에서 영세까지 받도록 했습니다.

제가직장에 매여있던 관계로, 아이들의 교육은 거의 율리아나의 몫이었습니다.

장남은 서울대 공대 졸업, 장녀는 경희대 이학박사, 차남은 경희대

의대 졸업 후 의사가 되었습니다.하지만율리아나는 아이들 교육 뒷바라지에 너무 신경 쓴 때문인지 기관지 천식과 파킨슨병에 걸려버렸습니다.

 

우리는 2002년 안양 비산동으로 이사를 와서 비산동 성당으로 교적을 옮겼습니다. 그리고서울 고덕동에 있는 경희대병원에 1주일에 한 번씩 3년간 통원 치료를 하였습니다.

차남 마르체리노가 평택 박애병원에 근무하게 됐습니다.모처럼 아들을 만나보러 간 날, 갑자기 율리아나의 병이 악화되어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7년을 요양병원에서 보냈습니다.

 

비산동으로 이사 오게 된 것도 율리아나의 뜻이었고, 오늘까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도 모두 율리아나의 덕입니다.

저는 오늘도 율리아나가 인도한 신앙의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글ㅣ이석연 베드로(비산동 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