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km! 머릿속으로는 그리 멀게 느껴지는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10km 두 번 뛰고 좀 더 뛰는 것으로 생각하니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25km는 우리 성당에서 미리내 성지까지의 거리입니다.
자정에 성당에서 출발하여 새벽 무렵 미리내 성지에 도착하는 ‘도보 성지 순례’를 기획했습니다. 먼저 경험해봐야 여러 돌발 상황에 대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친구와 답사(踏査)를 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활기차게 걸어갔습니다. 함께 걸으며 가정 이야기, 회사·병원 이야기, 본당 이야기, 과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절반 정도 걸었을 때부터 서서히 몸이 힘들어졌습니다. ‘그래봤자 15km 정도 걸었을 뿐인데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확실히 몸에 무리가 왔습니다.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하는데도, 마지막 언덕 구간을 넘어갈 때는 고관절 부위와 허리가 너무나 아팠습니다. “이 구간만 넘으면 끝이야!”를 속으로 되뇌이면서 천신만고 끝에 미리내 성지에 도착했습니다.
함께 걸어준 친구, 그리고 마지막 구간에 “걷다 힘들면 타요.”라고 말해준 새벽잠 물리치고 우리를 데리러 오신 자매님들, 힘든 길이었지만 그래도 잘 견디면서 좋은 시간을 보낸 나 자신에게도 고마움이 밀려왔습니다. 저 멀리 어디선가 성당 종소리가 마치 ‘수고했다.’라고 격려하듯 울려왔습니다. 이 순례의 감동을 다른 순례자들에게도 꼭 경험시켜 주고 싶었습니다.
도보 성지 순례 당일, 모든 순례자는 부푼 마음을 품고 성당을 출발했습니다. 자신의 건강 상태에 따라 걷는 거리를 선택하도록 안내했습니다. 미리 걸어보지 않았으면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충분히 걸을 수 있는 분들은 성당(출발지)에서부터 걷고, 중간부터 걸을 수 있는 분들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 걸어가고, 조금만 걸을 수 있는 분들은 버스를 조금 더 타고 가다가 내려서 걸어갔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순례자가 처음부터 걷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봉사자들 덕분에 안전한 순례가 되었습니다. 중간쯤부터는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더 힘들어진 순례길에 청년들로부터 시작된 묵주기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할 만큼 힘들다는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마지막 언덕 구간을 넘으면서 몸은 비에 젖은 만큼 천근만근 무거웠고,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습니다. 도착 후, 아침 미사를 기다리는 동안 녹초가 된 몸을 버스 속에서 잠시 뉘었습니다.
고통을 추억으로 만든 순례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비 때문에 힘은 들었지만, 오히려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우리 언제 또 도보 성지 순례 갈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구유에서 태어나시고, 유혹을 받으시고, 시련과 고통을 겪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마치 우리 삶의 순례를 위해 답사를 다녀오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가 삶의 무게에 맡겨진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걸어오길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그 안에 당신의 뜻이 있고, 삶의 아름다움과 기쁨과 행복이 새겨져 있음을 모든 것이 지난 뒤 깨닫게 될 것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글ㅣ유권 안토니오(내과·영상의학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