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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존(共存Coexistence)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3-09-15 09:16:20 조회수 : 307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행성들과 그 행성의 위성들(지구의 경우 달)은 서로 일정한 거리로 평형을 이루어 공존하고 있으며, 그 덕에 지구상 모든 생물이 오늘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만일 어느 하나가 자신과 합치라고 잡아당기거나 밖으로 밀쳐내면 그 평형은 깨지고 태양계는 붕괴될 것입니다. 달은 지구에서 평균 약 38km의 거리를 유지하며 한 달(정확히는 291/2)에 한 바퀴씩 지구 주위를 돌고 있습니다. 만일 달이 지구와 합쳐지거나 지구 궤도로부터 벗어나 버린다면 지구 생물은 살 수 없습니다. 서로의 관계(거리)를 잘 유지하는 공존이야말로 생존의 필수요소인 것입니다. 또한, 긴밀하게 연결된 자연계의 먹이사슬에도 사실은 공존을 위한 적절하고 일정한 관계의 유지가 필요합니다. 이렇듯 하느님이 지으신 세계는 공존을 통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인간들의 세상은 어떤가요?

 

사람들이 갖는 정형외과의 고정관념 중 하나가 세균과 금속은 절대 공존할 수 없다.”입니다. 골절 수술 후에 세균 감염이 된 경우, 금속을 제거해야만 감염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고 금속을 제거해 버립니다. 그런데 그 금속은 왜 인체 속에 들어있었을까요? 뭔가 필요해서 들어간 것 아닌지요? 그렇다면 감염을 이유로 제거하는 경우, 그 금속이 필요했던 상황(이유)은 어찌 되는 걸까요?

30년 전부터 척추고정용 금속이 사용되기 시작했고, 그중 일부는 수술 후에 세균 감염이 생기기도 합니다. 척추관 협착증 수술 후 상처가 감염되자(금속과 세균은 공존 불가라는 믿음 하에) 고정기기를 제거한 환자는 척추가 매우 불안정해져 보행은 고사하고 앉을 수도 없는 상태로 대학병원에 옮겨졌다가 결국 전신 합병증으로 사망하였습니다. 해로운 건 세균인데 공존 불가 믿음으로 애꿎은 금속(척추의 안정=활동=생명)이 제거된 셈이지요. 눈에 안 보이는 세균과 바이러스는 쫓아내지 못하고 대신에 눈에 보이는(통제 가능한)것들이 희생당한 셈입니다.

 

얼마 뒤 제가 척추고정 수술을 한 환자가 수술 1주일 만에 세균 감염이 되었습니다. 고민 후 저는 결국 공존을 시도하였습니다. 금속을 그대로 둔 채 깨끗이 세척한 뒤 항생제를 투여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농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수 주 간 배액관(suction tube)을 유지하여 치료한 결과, 한 달 만에 감염이 완치되었고 수개월 뒤 뼈도 잘 굳었습니다(척추 유합). 세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금속의 존재 이유를 부정, 제거하는 대신 공존(일시적)을 선택한 결과, 마침내 해로운 세균이 사라지고, 전신 건강 회복도 빨랐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나와 다른, 원치 않는, 혹은 두렵고 싫은 것과 함께 해야 할 상황이 생깁니다. 무조건 부정, 반대 혹은 멀리해야 하는 걸까요? 그로 인해 더 중요한 것을 상실하는 것은 아닐까요? “세상은 무법천지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따뜻한 사랑을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공동번역 마태 24,12-13).

 

글ㅣ김용민 베드로(국립경찰병원 정형외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