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건강하고 유쾌하던 안나 자매가 초췌하고 마른 얼굴에 매우 슬픈 눈빛으로 진료실에 들어왔습니다. 안나 자매 부부는 미사도 함께 다니고 봉사에도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평상시처럼 아침 식사를 잘하고 출근한 남편이 회사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유서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아 남은 가족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안나 자매에게는 남편이 없다는 슬픔보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난 남편에 대한 분노와 서운함이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답답해져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는 나날이 이어졌고, 건강마저 엉망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건강이 염려된 자녀들이 안나 자매를 한의원에 모시고 온 것입니다.
안나 자매와 진료실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날 이후 아무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했으며 심지어 자식들에게조차 남편에 대한 속상한 감정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화병’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저는 안나 자매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슴에 담아 두지 말고 남편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하라고 권했습니다. 우리가 영혼을 느낄 수 없다 해도 남편이 하늘에서 미안해하며 부인의 말을 들어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미사 중에 하느님께도 힘든 마음을 고스란히 봉헌하기를 권했고, 안나 자매는 꼭 그렇게 해보겠다고 다짐하며 진료실을 나갔습니다.
한 달 정도 치료받자 안나 자매의 건강은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그리고 약 일 년 후 예전의 밝고 환한 모습으로 침 치료를 오셔서 그간 심경의 변화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남편의 사진을 보며 용서가 안 되던 속상한 마음을 계속 말하다 보니, 부인에게 말 못 할 정도로 힘들었는데 내색도 못 한 남편에 대해 오히려 측은한 마음이 들어 여러 날을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 가슴이 뻥 뚫리며 머리와 몸이 시원해져서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남편에 대한 분노가 용서와 이해로 변하니 남편의 영혼을 위한 기도도 가능해졌고, 지금은 남편과 함께 노후에 하려고 했던 봉사를 하면서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지내고 계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삶을 살다 보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자주 만납니다. 내 안에 불편한 마음이 생긴다면 먼저 그 마음을 마주 보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후 그 마음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기도를 한다면, 하느님께서 분노를 사라지게 하는 용서의 마음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 용서의 마음은 타인에 대한 사랑을 싹틔우고 그 사랑은 몸과 마음을 치유해 줍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에 대해 용서가 되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하느님께 기도를 청해보세요.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글ㅣ차언명 바울라(광명 차한의원 원장, 소하동 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