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마지막 이별을 하는 곳이지만,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은 의외로 ‘웃음’이 울려 퍼질 때가 많습니다. ‘감동을 남기고 떠난 열두 사람’의 저자인 일본의 호스피스 전문의 ‘오츠 슈이치’는 이 책에서 자신이 만난 1,000여 명의 말기 환자 중 그에게 ‘감동’을 준 11명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그리고 저자는 죽음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에게 사람은 혼자가 아님을 강조하며 ‘부디 삶의 끈을 스스로 놓지 않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1년 전 이맘때 만난 48세 환자는 2년 전에한 건강검진에서 간과 폐 전이를 동반한 말기 직장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후 곧바로 수술하고 2년간 항암치료를 받았으나 복막까지 전이되며 항암치료를 중단했습니다. 오랜 기간 힘든 암 치료과정을 경험한 환자는 강원도의 작은 요양원에서 생활하였지만, 증상이 악화되어 가족의 권유로 본원에 입원했습니다. 입원 시 환자는 거의 모든 대화와, 물을 제외한 일체의 식사를 거절했습니다. 며칠 후 부인이 외출한 사이 환자는 제게 면담을 요청해, 안락사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도움을 줄 수 없다면 자신은 자살을 선택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의료진으로서 환자가 고통스러워하는 증상을 적극적으로 조절하였고, 동시에 항우울제 처방 및 개인 상담, 가족치료를 시행하였습니다. 또한, 영적 돌봄을 위해 신부님과 수녀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2주 정도 지나자 환자는 더이상 극단적인 요구를 하지 않았지만, 점점 기력이 떨어져 4주 후 임종했습니다. 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환자와 가족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던 경우입니다.
반대로, 그의 맞은편 침상에 입원하셨던 말기 담관암 환자는 항상 밝게 웃고 계셨던 분이십니다. 농아학교 교사이자 목사였던 환자는 청각장애인이었습니다. 그는 1년 전 담관암 진단을 받았으나 신부전이 있어 방사선 치료만 하고 본원에 입원했습니다. 배우자와 형제들도 청각장애인이어서 수어로만 대화하였지만, 그의 주변은 늘 웃음이 넘쳤습니다. 저와는 필담으로 대화했는데,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어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병동 요법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셨는데, 직접 만든 액자를 자랑하시며 ‘살고 싶은 마음에 기도하고 있다. 천국을 생각하며 액자를 꾸몄다.’라고 필담을 적어 보여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암환자와 가족들은 암 진단 후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되며 정서·심리적 위기 상황을 겪습니다. 또한, 치료 과정 동안에는 질병 자체의 고통뿐 아니라 치료로 인한 부작용과 불편함으로 신체적, 정신적 부담감이 가중됩니다. 암환자들이 경험하는 주된 정서 반응 중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는 ‘우울’은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심할 경우 환자를 자살에 이르게 합니다. 죽어가는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다 해도, ‘인간답게 살다 죽고 싶다.’는 점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부분입니다.
작년 이맘때 ‘의사 조력 존엄사법’이 발의되면서 사회적 논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명을 임의로 처분할 권리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죽여달라.’는 환자들의 부탁은 ‘도움과 애정을 구하는 고뇌에 찬 간청’이라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호스피스 완화의학의 가장 중심 철학은 ‘마지막까지 인간답게 살 권리’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글ㅣ김세홍 마르코(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장, 가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