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없이 공정하신 하느님
예수님의 가르침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기에 유대교라는 뿌리에서 출발한 그리스도교가 많은 박해를 겪으면서도 발전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민족의 차이, 문화, 신분, 남녀의 차이가 만연하던 시기에, 소수의 사람만이 행복해지고 구원을 얻는 사회가 아니라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까지 모두 행복을 누릴 수 있고,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도 말씀하십니다.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마태 25,32; 40,45).
양은 아무도 해치지 않고 온유하며 누구에게 해를 입어도 저항하지 않고 견디는 인내 덕분에 의로운 사람을 나타내고, 반면 염소는 변덕, 자만심, 호전성 같은 악덕을 특징으로 갖고 있어 악인을 나타냅니다(「교부들의 성경주해」 中). 그리고 이 말씀은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잘잘못에 따라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 됩니다.
다함이 없는 본성을 지니신 분께서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갇혔다 하시는데, 정말 그분이 본성 안에서 그러셨을까요? 아닙니다. 당신의 종들 안에서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악인들이 단죄받은 이유도 다른 것이 아니라 당신의 종들 안에서 굶주리고 목말랐을 때 보살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양과 같이 오른쪽에 자리한 의인들은 선(善)을 행하고도 자신이 그 선을 행했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일상 안에 사랑이 담긴 선이 자연스레 녹아있기에, 그들이 선을 행하는 것은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염소와 같이 왼쪽에 자리한 사람들은 사랑이 결여된 형식을 더 지향하기에 듣고서도 못 들은 척하고, 이해하고서도 이해하지 못한 척합니다. 그저 외면할 뿐입니다.
차별 없이 공정하신 하느님께서 지금의 나를 바라보실 때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어느 쪽에 자리하고 있는지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악인들이 심판 때에,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감히 서지 못하리라”(시편 1,5).
글 | 김진우 베드로 신부(제1대리구 복음화2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