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사진첩을 구경한 사람들 모두가 놀라는 사진이 있습니다. 저는 10살 무렵까지 대구대교구 황금 성당에 다녔는데요, 그때 첫영성체를 위해 교리를 배우며 한 '순교자 체험' 사진이 바로 그것입니다.
첫영성체 교리 마지막 주 어느 저녁,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눈을 천으로 가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손을 잡고 교육관 가장 안쪽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에 들어가자 선생님 중 한 분이 우리를 줄 세우고, 방망이를 들고서는 한 사람씩 매섭게 물어보았습니다.
"배교하겠느냐!"
저와 친구들은 오들오들 떨었지만 다들 순교를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방망이를 든 선생님은 책상에 엎드린 우리에게 지금이라도 배교하면 여기서 나갈 수 있다면서 겁을 주셨습니다. 불이 켜진 후, 나와 친구들은 울면서 '순교의 선물'로 과자 꾸러미를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은 억지스럽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는 추억으로 남은 것 같습니다.
사진첩을 다시 보면서, 나의 신앙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순교하는 모습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참 순수하고 예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마주치는 크고 작은 일상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배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일상의 순교로 거룩한 ‘선물’을 그때처럼 받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글ㅣ이정원 데레사(동천동 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