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모녀(母女)가 진료를 받으러 왔습니다. 딸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죄인처럼 들어왔고, 의기양양한 어머니가 딸의 증상을 대신 말씀하셨습니다. 작년 수능에서 너무 긴장한 딸이 평상시보다 낮은 점수를 받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었고, 결국 재수를 하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한약 치료를 통해 딸의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하여 시험 도중 긴장과 불안이 없어지게 하려고 한다면서,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고개를 푹 숙인 딸의 모습에 어쩐지 마음이 짠해져서 어머니 없이 단둘이 좀 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딸은 부모의 큰 기대에 미치지 못하니 시험 때마다 실수를 할까 봐 불안해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는 것도 잘 기억이 나지를 않아, 시험을 못 보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공부를 충분히 하지 못해 시험을 못 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충분히 공부해서 모두 아는 문제인데도 긴장해서 정답을 틀리는 경우도 꽤 많을 것입니다.
어머니를 다시 불러 시험 날 아침에 딸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여쭤보았습니다. “아는 것 틀리지 말고, 잘못 찍지 말고, 실수하지 말고, 긴장하지 마라! 저번처럼 또 시험 못 보면 안 된다.”라고 이야기한다는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님이 비슷하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예수님께서 수능을 보신다면 성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릅니다. “네가 공부해서 아는 문제는 다 맞힐 거야, 그리고 혹시 모르는 게 나오면 다음에 더 공부면 될 내용이라고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찍기를….”
군중에게 설교하러 가는 예수님께 성모님이 “설교할 때 실수하지 말고, 이상한 소리도 하지 말고, 긴장하거나 떨지 마라!”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중요한 시험을 치르는 자녀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날 재수생 어머니에게는 성모님처럼 자녀에게 말하는 법을, 학생에게는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공부하느라 허약해진 몸과 마음을 보하는 한약도 지어 주었습니다. 다행히 다시 치른 수능에서는 딸이 좋은 성적을 얻어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다는 기쁜 소식을 어머니께 전해 들었습니다.
며칠 전 수능 백일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백일기도를 정성껏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소 자녀에게 하는 말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자녀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천국의 언어를 구사하면, 자녀는 분명 수험생 시기를 매우 잘 보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머니로서의 성모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자녀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도저히 생각나지 않을 때, ‘성모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고 생각하며 기도와 묵상을 해봅시다. 성모님께서는 지혜로운 해답을 반드시 주실 것입니다.
글ㅣ차언명 바울라(광명 차한의원 원장, 소하동 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