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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머물러보아야 제대로 안다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1-01-15 13:34:01 조회수 : 861


가서 머물러보아야 제대로 안다


2019년에 제주도에서 한 달 살이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전에 신학교에서 신학생들과 졸업 여행차 제주도에 몇 번 간 적은 있었지만, 그렇게 오랜 기간 머무른 적은 없었지요. 바닷가에 있는 원룸으로 된 펜션 하나를 구해 지내면서 미뤄놓았던 번역작업도 하고 틈틈이 운동도 하면서 말 그대로 힐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제주도에서 지내니 전에 여행차 들렀을 때는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보이더군요. 예를 들면 눈앞의 푸른 바다가 전에는 시원하고 낭만적으로만 보였는데, 그곳에서 고되게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또 경이롭게만 보이던 성산 일출봉도 자주 보니 자연스레 일상의 풍경이 되고, 일출봉보다는 오히려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행동과 표정이 눈에 더 들어오더군요. 한 달 살이를 하기 전에는 제주도를 떠올리면 왠지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느낌만 들었는데, 일정 기간 그곳에서 머물다 보니 아름다운 풍경이나 관광 명소보다 그곳에서의 삶이 눈에 더 보이고 피부로 와닿기 시작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원리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근근이 일주일에 한 번 주일미사만 참례한다든지, 요즘과 같은 코로나 시국에는 그것도 어려워 TV나 인터넷을 통해 미사 시청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자칫 맛보기 신앙에 머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 있는 우리에게 오늘의 독서와 복음은 우리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 줍니다.


1독서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 어린 사무엘의 모습을, 그리고 복음에서는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를 부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만납니다. 특히 복음에서 요한의 두 제자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 와서 보아라.”에 주목해 봅니다. 예수님을 가리키며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하는 스승의 말을 듣고 쭈뼛쭈뼛 예수님께 다가가 그들이 던진 궁색한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이 어디에 묵고 있는지 설명해주시는 대신 직접 와보라고 초대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이 찾던 것, 곧 구원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뛰어들어 삶으로 체험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독서의 사무엘도 젖을 떼자마자 바로 부모의 품을 떠나 엘리 사제의 집에서 함께 지내며 자라다가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까. 어머니 한나가 사무엘을 애지중지 품에서만 키웠다면, 사무엘은 하느님의 사람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부르심은 듣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는 어차피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 전체가 그분과 함께하고, 의지적으로 그분을 향해 나아가고자 끊임없이 노력할 때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답은 바로 기도입니다. 꼭 성당이 아니더라도 고요한 장소에서 마음을 모아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꾸준한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머물고 그분을 제대로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찬례의 참여는 우리를 하느님과 일치시켜 줍니다. 거룩한 미사에 걱정없이 참례할 수 있는 날이 하루속히 오길 오늘도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글 박찬호 필립보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