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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사랑하는 난 행복한 사람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3-07-21 09:20:22 조회수 : 342

9살 어린 친구가 아빠와 함께 진료실로 들어왔습니다. 배가 아프다고 말을 한 뒤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아이의 얼굴이 서서히 창백해지고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면서 고개를 약간 숙인 자세로 잠시 있더니, 갑자기 구토를 했습니다. 진료실 바닥에는 토사물이 흩어져 있었고, 창백했던 아이의 얼굴은 이내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아이와 아빠는 연신 미안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괜찮아? 이제 속이 좀 편해졌어?”라고 말한 뒤, 간호사를 불렀습니다. 들어온 간호사는 바닥의 참혹한 상황을 보자마자 곧바로 맨손으로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뒤따라 들어온 다른 간호사는 비닐장갑을 끼고 도왔습니다. 연신 미안하다는 아이의 말에, 간호사는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며 아이를 다독였습니다. 점심시간에 간호사에게 어떻게 그렇게 맨손으로 치울 수 있었냐고 물었습니다. 간호사는 자기 아이와 비슷한 나이라 집에서도 그렇게 하니까 그냥 스스럼없이 처리했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런 간호사의 마음에 감사함을 느끼는데, 하물며 아이와 아빠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저는 인복(人福)이 참으로 많은 사람입니다. 함께 일을 하는 형님은 피를 나누진 않았지만, 친형제처럼 저를 잘 이해하고 모든 것을 배려해 주며 양보합니다. 내 병원처럼 여기면서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직원들도 있습니다.

 

전적으로 내 편에서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이 있고, 늘 기도해 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때론 환자들이 고맙다며 먹을 것이나 편지를 건네주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교회 공동체 내에서도 제 말에 귀 기울여 주시고 발맞춰 도와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형제 같은 친구들, 형님들, 누님들, 동생들. 노래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이런 분들의 사랑을 받기 전에 먼저 이분들을 사랑하는 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찢긴 살갗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매 맞아 퉁퉁 부은 눈에 고인 피눈물과 심장이 뛸 때마다 지끈거리는 가시관의 고통을 그저 묵묵히 받아 안고 계신 분은 숨을 거두시면서까지 순종하며 그렇게 하느님을 사랑하셨습니다. 당신의 그 사랑을 저 또한 그렇게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난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글ㅣ유권 안토니오(내과·영상의학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