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속의 게, 독 밖의 게
독 속에 게를 넣어두면 한 마리도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겨우 독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아래에서 다른 게가 올라가는 게의 다리를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이걸 보면서 게는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없고 서로 잘 되는 걸 못 보는 못된 심성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게는 서로 경쟁상대가 되어 서로를 괴롭히는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똑같은 게를 독 밖으로 꺼내 원래 게가 살던 바닷가에 풀어놓으면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진다. 게는 다른 게의 다리를 잡고 늘어지지 않는다. 평화롭게 자기 갈 길을 갈 뿐 다른 게를 괴롭히지 않는다. 이걸 보면서 게의 본성이 악한 것이 아니라, 게가 처한 환경이 독 속이었는가 독 밖이었는가에 따라 게가 악하게도 되고 선하게도 됨을 알 수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며 아들이 상장을 받아 왔다. 이름이 참 특이했다. ‘너희 부모님이 누구니’ 상이었다. ‘평소 선생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친구들과 잘 지내며 공부도 잘하고 예의도 잘 지켜 도대체 부모님이 누구신지 궁금하여 이 상을 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아래에 담임 선생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처음 보는 특이한 상장이라 놀랐다. 아들에게 너만 이 상장을 받았느냐고 물어보았다. 아들은 반 아이 서른 명이 다 받았다고 했다. 한 번 더 놀라서 모두 ‘너희 부모님이 누구니’ 상을 받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들은 아이마다 다른 제목의 상을 받았다고 했다. 청소를 잘하는 아이에게는 ‘늘 새 건물로 만들어 주는구나’ 상을, 달리기를 잘하는 아이는 ‘우사인 볼트가 울고 가겠구나’ 상을 주었단다. 나는 담임 선생님의 시선이 놀라웠다. 그리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 실천력이 존경스러웠다. 자칫 성적이라는 독 속에 서른 명의 아이들을 몰아넣고 우등생과 열등생으로 줄 세울 수 있는 것을, 독 밖으로 아이들을 모두 풀어놓아 각자가 가장 잘하는 것을 더욱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한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화를 많이 내며 산다. 그리고 화를 나게 한 상대를 문제로 삼곤 한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독’이 문제인 경우가 더 많다. 화를 덜 내며 살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독을 발견하고 독 밖으로 나를 끄집어내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독 속의 게들에게 그 속이 전부가 아님을 알려주고 밖으로 초대해야 한다. 화에서 자유로운 삶은 독 밖에 있다.
글 | 이서원 프란치스코(한국분노관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