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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명의 빵이다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3-06-09 09:19:50 조회수 : 453

다음 주면 성 라자로 마을에서의 생활도 8년 차로 접어듭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조용한 10여만 평의 마을에서 한센 가족들과 생활하다 보니, 천국과도 같은 이 마을을 일구시고 가꾸셨던 초대 원장 이경재 신부님이 떠오릅니다.

 

19514월 사제서품을 받으신 신부님께서는 한국전쟁 상황에서 북수동 성당 보좌로 부임하시어 40여 개의 공소를 방문을 하시다가 성 라자로 마을의 한센인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1224일 성탄절 전야에는 직접 마을을 찾아가시어 사제가 된 후 첫 성탄 대축일 미사를 한센인들과 함께 봉헌하셨습니다. 그때 이경재 신부님은 한센인과 함께 살기로 결심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너무나도 컸습니다. 400여 명의 한센인과 100여 명의 미감아(나환자 부모에게서 태어나 병에 감염되지 않은 아이)의 곯은 배를 채워주는 것이 가장 큰 숙제임을 아시기에, 신부님은 국내·외 어디든지 찾아가시어 도움을 호소하며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환우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원장 신부님이 당신은 식사도 제대로 못 하시면서도 국제 거지라는 별명을 스스로 붙이고 세계 곳곳을 방문하셔서 예수님 성체의 기적을 굶주리는 성 라자로 마을 가족들에게 보여달라.’고 외치고 계신다는 것을. 이경재 신부님은 회고록을 통해, 당신이 한 달 이상 외국을 다니며 도움을 청할 때, 환우들이 성체 대전에 모여 얼마나 많은 기도를 바쳤는지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원장 신부로 일하시는 동안 신부님은 엄청난 과로로 폐렴을 앓아 피를 토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오직 성 라자로 마을 가족들만을 생각하셨습니다. 그러한 신부님의 피는 그야말로 예수님의 성혈과도 같았습니다.

 

지난 511일 이경재 신부님의 선종 25주기를 맞이하여, 마을 환우들과 직원들, 운영위원들이 함께 안성추모공원 성직자 묘역에 계신 신부님을 찾아뵙고, 미사와 연도를 바치고 왔습니다. 가기 전, 수녀님과 일정을 논의하면서 마을에서의 새벽 미사는 생략하자고 말씀드렸더니, 수녀님께서 거동이 불편해서 추모공원에 갈 수 없는 어르신들이 있으니, 새벽 미사를 드리고 가시죠.”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뾰로통하게 추모공원에 가실 수 없다고 하면 마을 성당에도 가기 힘들다는 것이니 그날은 미사 쉬시라고 하시죠.”라고 말했는데, 수녀님께서 신부님! 그분들에게는 매일 모시는 성체가 밥보다 더 중요해요. 워낙 고령이라 버스를 타고 먼 거리 가는 것이 힘들어서 그런 것이지, 그분들도 얼마나 가고 싶어 하시는데요.”라고 답하셨습니다. 우리 마을 어르신들은 성체를 모시지 않는 하루를 상상도 하지 못하시는데! 어차피 추모공원에 가서 미사를 드릴 것이니 새벽 미사는 쉬려고 했던 저의 얄팍한 마음이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이경재 신부님은 마을 어르신들의 을 마련하기 위해서 고생하시다가 피까지 쏟으셨는데, 저는 어르신들이 매일 모시는 생명의 빵 성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간과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성체는 예수님의 몸인가요? 생명의 양식인지요? 성체를 어떠한 마음으로 모시는지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요한 6,51).


글ㅣ한영기 바오로 신부(성 라자로 마을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