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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나에게 준 선물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3-06-09 09:19:25 조회수 : 376

삶에서 질병이나 사고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올 수 있습니다. 저는 2년 전 봄날 CT 검사 중 조영제 부작용(아나필락시스 쇼크)으로 죽음 근처까지 다녀왔습니다. 조영제가 주입될 때, 온몸이 뜨겁고 따갑게 느껴지면서 숨을 쉴 수 없었는데, 그대로 쓰러져서 의식을 잃게 되었습니다. 잠시 후, 깜깜한 어둠 속에 아무 감각도 없이 제가 홀로 서 있었습니다. 제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나가려고 팔을 휘젓다가 다시 정적이 흘렀습니다. 한참 뒤에 자그마하고 동그란 빛이 점점 커지더니, 가족과 의료진이 저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2시간 후에나 의식이 돌아온 것입니다. 누워만 있던 중환자실에서 퇴원하는 날, 직접 걸을 수 있고 파란 하늘을 보게 되니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 저절로 감사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퇴원 후 체력이 빨리 회복되지 않자 스멀스멀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하필 내가 이런 힘든 경험을 하나 싶었고, 때문에 마음도 무척 힘들었습니다. 아나필락시스 쇼크는 일종의 사고였지만, 한의사가 제 몸 하나 건사 못하나 싶어 자괴감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언제나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성경 구절을 읽다가 딱밤을 맞은 듯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아픔 속에서 감사할 부분은 찾지 않고 투덜거리는 제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우선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에 가장 큰 감사를 느꼈습니다. 매일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것, 가족들과 같이 식사하고 하하 호호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눈이 오면 눈이 와서 감사했습니다. 이 모든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의사는 직접 아파보면 환자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아나필락시스 쇼크를 통해 중병이나 수술로 체력과 면역력이 떨어진 분들을 더 잘 이해하고 위로해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하느님께서는 제가 좀 더 삶을 사랑하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며 겸손하게 살라고 이런 아픔을 선물로 주신 것 같습니다.

 

아플 때는 한 시간 동안 앉아있기가 힘들어서 미사를 한동안 못 드리다가, 석 달 뒤 성당에 가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성체를 모시니 성체가 무척 달콤하게 느껴지면서 기운이 마구 솟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성체가 우리에게 생명을 준다는 기분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살면서 만나게 되는 질병이나 아픔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그 안에는 하느님의 빛나는 선물이 꼭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제게 있어 그때의 아픔은 이렇게 살아있음과 성체를 모실 수 있음이 큰 축복임을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