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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세운 하동 진교 성당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3-05-03 16:45:51 조회수 : 371

관아로 잡혀 온 천주교도를 문초한 기록에는 왜 천주를 믿느냐?’ 라는 물음에 순교자들이 떳떳하게 내가 임금을 존중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천상에 하느님이 있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됐는데 그렇다면 내가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대답한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히브 11,1.3).

 

믿음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비합니다. 보이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기 마련인데,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신비이며 살아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싶어졌습니다.

 

진교 성당은 1827년 곡성에서 시작된 정해박해를 피해서 하동의 작은 마을 진교로 삶의 터전을 옮긴 박해받은 자들의 땅에 세워진 성당입니다. 정해박해는 전국에서 500명이나 되는 천주교인들이 검거된 대규모 박해 사건입니다. 조정에선 배교를 한다고 하면 죄를 묻지 않았지만, 믿음을 지키고자 했던 교인들은 모진 고문으로 고초를 당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배교문서에 서약하였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키다 형장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합니다. 검거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깊은 산골로 숨어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진교 성당이 있는 하동 진교리, 때이른 더위로 조금만 걸어도 땀이 비가 오듯 쏟아집니다. 성당 아래쪽에 주차를 하고 위를 올려다보니 성당의 모습이 보입니다. 성당의 겉모습은 소박합니다. 높게 철탑을 올린 고딕풍의 성당은 아니지만, 꽤 세심한 정성을 기울여 지은 듯한 인상입니다. 너른 앞마당과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내는 오래된 나무들이 성당에 처음 오는 방문자를 맞아줍니다.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햇살이 오묘한 색으로 성당 내부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맨 앞자리에 앉아 십자고상을 올려다보며 기도합니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는 부족한 믿음을 참회하고 믿음의 삶으로 돌아가기를 소원했습니다. 텅 빈 성당에서 오로지 그분과 나만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분은 빛으로 저를 어루만져 주셨고 십자고상의 눈과 상처를 통해 회복될 삶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사진ㅣ이선규 대건 안드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