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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무렵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3-04-28 08:50:43 조회수 : 303

벚꽃은 잎새가 나오기 전에 겨우내 추위를 견뎌내고 따사로워진 햇살에 꽃망울을 터뜨리며 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그 무렵은 날씨도 풀리고 대지를 녹이기 위해서 봄비가 내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바람이 불면 벚꽃 비가 내리기도 합니다.

그날은 밤새 추적추적 내리던 비에 젖은 꽃잎이 바람에 자신을 맡기며 이리저리 흩날리는 날이었습니다.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 성당 형님은, ‘벚꽃이 흩날릴 무렵에 그렇게 하느님 품에 안겼습니다.

 

제가 본당에서 처음으로 봉사하게 된 곳은 청소년 위원회였습니다. 주변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머뭇거리는 저에게 형님은 문득 다가와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안토니오, 잘할 수 있어! 안토니오니까 할 수 있을 거야.”

 

사실, 간혹 본당에서 뵐 때 인사 정도만 해서 자동차 관련 일을 하시고,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 정도로만 알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후 함께 봉사하다 보니, 무척 활동적이고 성격도 쾌활하고 재치가 넘치는 분이었기에 형님 주변에는 항상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또 항상 열심히 기도했기에, 운영하는 가게 한편에는 촛농이 내려앉아 예술작품이 된 초가 줄지어 놓여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무언가를 부탁하려고 하면 무조건 수긍해 주는 예스맨이기도 했습니다.

 

바람 불며 벚꽃이 떨어지던 날 늦은 오후에 형님을 장례식장에 모셨습니다. 몇 달 전 소공동체 모임에서 함께 다녀온 동해 바다, 그곳 모래사장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웃고 떠들던 형님이 생각나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많은 젊은 본당 신자들이 형님을 보내기 아쉬운 마음에 매일같이 장례식장에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장례식장에는 보였던 얼굴이 자꾸 또 보였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형님은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낼 수 없는 동생들을 챙겨주면서 연휴를 함께 보냈다고 합니다. 그렇게 저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 분이셨습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형님을 생각하면서 추모하는 사람이 있으니, 형님이 살아생전 얼마나 잘 살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형님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 행복을 나눠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나눠주지 않았다고 하지만, 정작 받은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정겨운 마음 씀씀이, 커피 한 잔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여유로움이 때로는 사람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 같습니다.

 

형님, 형님은 그렇게 이웃을 사랑하신 겁니다. 벚꽃 무렵, 형님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글ㅣ유권 안토니오 (내과/영상의학과 의사)